야망계급론/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지음/유강은 옮김/오월의봄/400쪽/2만2000원
과시적 소비의 효용성 점차 감소부유층 지위 드러낼 새 수단 찾아
자수성가형 엘리트 생산성 몰두
지식·문화 등 비과시적 소비 초점
그는 쓸모없고 별다른 기능도 없는 물질적 재화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부유하고 게으른 집단인 ‘유한계급’을 맹렬히 비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는 극히 일부에 국한됐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발전으로 중간계급이 생겨나고 물질적 재화도 저렴해졌다. 웬만한 사람들도 명품 하나쯤은 있는 시대가 됐다. 자신의 지위를 망각한 채 ‘작은 파우치’를 덥석 받아 탈이 나버린 영부인처럼 과시적 소비는 때론 독이 될 수도 있다.
과시적 소비의 효용이 줄어들면서 부유층과 엘리트들은 자신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찾아냈다. 책은 베블런의 유한계급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변주한 ‘야망계급’을 조명한다.
이들은 교육받은 자수성가형 엘리트 집단이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 일하고 생산성에 몰두하느라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
명품백으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지식수준, 문화자본, 사회적·환경적 의식 등을 드러내는 비과시적 소비에 초점을 둔다. 교육, 육아, 가사, 휴가 등에 상당한 돈을 지불하며 여가 시간을 확보한다.
저자는 이들의 행태가 유한계급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동시에 자신의 지위를 재생산하려는 노력이라고 봤다. 과거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자식 교육에 왜 그렇게 공을 들였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저자는 야망계급의 소비문화가 과거 유한계급의 물질적 재화 소비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심각하게 계급 격차를 확대한다고 지적한다. 120여년이 지났지만 상류층이 지금도 하위 계층과 선 긋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베블런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야망계급의 분투가 두드러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책을 읽으면 씁쓸함이 더해진다.
2024-03-1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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