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떠나 50년 맑은 詩語로 인류애 읊다

조국떠나 50년 맑은 詩語로 인류애 읊다

입력 2010-05-15 00:00
수정 2010-05-1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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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美시인 마종기 ‘하늘의 맨살’·‘당신을… ’ 잇따라 펴내

원망도 회한도 없다. 디아스포라(이산·離散)의 삶은 그저 운명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개성으로, 서울로, 마산으로 떠돌며 자란 것은 오히려 시(詩)의 자양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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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
마종기 시인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소아방사선과 의사 생활을 한 것도, 낯선 언어의 홍수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것도 고통스러운 노력의 결과였지만 그 역시 그저 운명이었다.

그렇게 꼬박 50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는 어두운 밤길 밝은 등불처럼 오롯한 희망이었다. 물이 흘러가듯 자유롭고 맑은 언어(言語)와 문장의 운용은 아버지가 물려준 자산이었다. 마냥 순응하지도, 거절하지도 않고 맞닥뜨렸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자신의 시(詩)가 어머니 나라의 국경도, 순혈을 고집하는 민족의 협애함도 뛰어넘고 보편의 인류애로 나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종기(71)가 4년 만에 펴낸 열두 번째 시집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 펴냄)은 등단 50년을 맞은 노() 시인이 품을 수 있는 회한과 그리움, 새로운 전망을 가득 담고 있다. 그는 내친 김에 1950년대부터 써왔던 수백편의 시 중 50편을 직접 골라 에세이 형식으로 시작(詩作) 노트를 펴냈다.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비채 펴냄)는 가슴이 더웠던 어린 시절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냥 시인으로 살려고 했건만 의사가 되었고, 그 뒤 우여곡절을 겪었던 그의 삶과 가족의 비사(悲史), 시 세계의 바탕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한다.

조국을 너무나 뜨겁게 사랑한 죄로 44년 전 조국을 떠나야 했던 그는 “세상을 사는 게 내 의지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만 얘기했다. 그는 군의관 시절이던 1965년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고,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겪은 일을 발설하지 말고, 미국으로 가서 의사 생활에만 전념하라.”는 조건으로 조국을 떠났다. 그렇게 그리움만 품고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재미(在美) 시인이라고 불렀다. 한시도 모국어의 아름다운 결을 잊은 적이 없건만 이따금씩 한국을 찾아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모아뒀던 시를 슬그머니 꺼내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곁에 있었다. 게다가 시작 에세이 덕분에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느낌의 시어 속에서 구사되는 따뜻한 시정(詩情)은 4년 전 펴낸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등 지금까지의 시편들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황혼’, ‘이별’, ‘내 나라’ 등 시편에서 보여주는 정서는 늘 결핍됐던 조국애를 훌쩍 넘어섰음을 여실히 확인시킨다.

그는 “조국의 땅 자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극복한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강박관념처럼 핏줄의 순결함만을 강조할 이유가 없어요. 문학에서 순혈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움직임이 더 많으면 좋겠어요.”라고 얘기했다.

치매에 걸려 ‘울지도 웃지도 않으시고 물끄러미/ 긴 세월을 돌아 나를 보시는 어머니’(‘자장가’)이자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 만나신다고/ 박명의 빈 들판을 향해 매일/ 먼 길 떠나시는 내 어머니’(‘치매’)를 위해 슬픈 자장가를 부르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문득 울컥해진다. 또한 에세이에는 창졸간에 세상을 떠나버린 동생, 비행기 표값이 없어 임종하지 못한 아버지, 치매에 걸려 과거로만 돌아가는 어머니, 그립고 원망스러운 조국에 대한 회억까지, 이역의 밤에 시를 쓰는 마종기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의 시는 쉽고 편안한 입말로 이뤄져 있다. 시를 모른다고, 시는 시인들만의 것이라고 외면하기엔 너무도 쉽게, 따뜻하게, 가슴이 절로 움직이게 쓰여져 있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시는 인간과 세상의 비의(秘意)를 수줍지만 정직하게 담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국내 문단에서 동화의 영역을 개척했던 마해송이었음을 떠올려 보면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재능이 천부(天賦)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2010-05-1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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