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모닝 버마】기 들릴 그림 소민영 옮김/서해문집 펴냄
세상에는 버마라는 나라와 미얀마라는 나라가 있다. 사실 같은 나라다. 입장에 따라 호칭이 다르다. 원래 이름이 버마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독재 정부가 1989년 버마 민족 외에 소수 민족도 아우른다며 나라 이름을 바꿨다. 대외적으로 대량 학살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있다.그곳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반체제 인사들과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은 미얀마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 회원국의 뜻을 존중한다는 유엔은 미얀마라고 쓴다. 우리나라는? 1991년 외래어 공동 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정했으나, 최근 들어 버마라는 이름을 쓰자는 움직임도 있다.
우리에게 버마는 어떤 곳일까.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국제뉴스에 간간이 등장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지 여사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사이 버마는 점점 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기 들릴이 그린 만화 ‘굿모닝 버마’(소민영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버마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 들릴은 두 달 동안의 평양 체류기를 만화 ‘평양’(2003)으로 옮겨 국내에서도 알려진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 겸 만화가다.
그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버마를 찾아간 것은 아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인 아내를 따라나섰을 따름이다. 아내가 의료 구호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어린 아들과 함께 좌충우돌 버마를 알아간다. 유모차를 끌고 수지 여사가 연금된 곳을 찾아갔다가 군인들에게 쫓겨나고, 버마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다가 당국에 잡혀갈 뻔하기도 한다. 그는 신랄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버마를 보듬는다.
버마에서는 성범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외국영화 관람이 금지되기도 한다. 오토바이는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시내 통행이 금지된다. 모든 출판물에는 검열이 있다. 남의 집에서 자려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눈깜짝할 사이에 수도가 바뀌기도 한다. 정치적 상황 외에도 군사독재 그늘이 드리운 버마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유머러스하게 묘사된다. 잃어버린 자유의 이름 버마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2-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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