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 제공
그래서 그를 어떻다 규정하기보다 이상이라는 하나의 독특한 장르로 두는 것이 이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일 수 있다. 지난 9일 개막해 1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인 서울예술단의 ‘꾿빠이, 이상’은 이상 그 자체를 조명한 창작가무극이다.
2017년 초연한 이 작품은 김연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머시브(관객몰입형) 공연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데드마스크를 받는다. 관객들은 이상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이 되어 배우들을 따라 들어가게 된다.
서울예술단 제공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이상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이들이 유고시 ‘최후’를 읊조리고 이상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하면 조문객으로 참여했던 관객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객석 없는 무대에 앉게 된다. 그때부터 시인,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화가였던 이상의 직업처럼 다양한 장르와 형태가 혼합된 공연이 펼쳐진다.
이상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3명이다. 자신이 누군지 혼란스러운 ‘감각의 이상(感)’,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지성의 이상(知)’, 자신의 얼굴을 찾고자 여러 사람을 만나는 ‘육체의 이상(身)’을 연기한다.
서울예술단 제공
이상 주변의 인물들이 등장해 하나씩 실마리가 풀려가지만 어떤 분명한 체계가 잡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 작품의 매력이 도드라진다. “당신은 당신의 복잡함과 모호함이 힘들지 않았냐”는 대사처럼 ‘꾿빠이, 이상’은 이상을 어떤 특정한 틀에 가두지 않고 복잡함과 모호한 속성을 다양한 형태로 펼쳐낸다. 보통의 공연과는 다른, 그런 규정할 수 없음이 이상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듯이.
실험적인 작품이지만 불편함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순간순간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구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복잡다단한 생애를 90분이라는 압축된 시간에 걸쳐 펼쳐내면서 기존의 관람방식과 무대 활용 방식을 바꿔놓은 신선한 연출이 ‘이머시브 공연’을 감상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공연의 마무리는 이상이 다시 관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제야 관객들은 이 공연의 제목이 ‘꾿빠이, 이상’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복잡하게 흥분된 감정을 지닌 채 관객들도 이상에게 인사를 하게 된다. 꾿빠이,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