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화장실 청소부의 햇살 같은 순간들…영화 ‘퍼펙트 데이즈’

[프리뷰]화장실 청소부의 햇살 같은 순간들…영화 ‘퍼펙트 데이즈’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4-07-02 11:43
수정 2024-07-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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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영화 ‘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빗질 소리에 잠을 깬 남자. 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한 뒤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집을 나선다. 기지개 한 번 쭉 켜고 씩 웃는다. 오늘도 상쾌한 하루가 될 것 같다.

3일 개봉하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하루를 잔잔하게 따라간다. 때론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소소한 기쁨은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처럼 잠깐씩 반짝인다.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며 출퇴근하거나,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을 찍을 때다. 일을 마무리하고 단골 식당에 가서 마시는 술 한잔, 헌책방에서 산 100엔짜리 소설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준수한 외모 덕에 뙤약볕이 비추는 순간도 있다. 젊은 동료가 짝사랑하는 여성이 그에게 반해 볼 뽀뽀를 하는가 하면, 단골 술집 여사장이 대놓고 호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그의 삶은 거의 매일 비슷하다.

고교생 조카 니코가 오랜만에 찾아오면서 그의 일상이 크게 일렁인다. 엄마와 싸우고 가출한 니코는 히라야마의 삶에 흥미를 보인다.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는 니코는 카세트테이프가 신기하고, 번듯한 삼촌이 왜 청소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니코는 “엄마가 삼촌은 다른 세상에 산다 하더라”고 말하고, 히라야먀는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이 있고,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라고 답한다.

니코를 데려가라는 히라야마의 전화에 여동생이 찾아오면서 그의 과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찾아온 여동생은 청소일이 어떤지 물어보고,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 이야길 꺼낸다. 그러나 이마저도 몇 마디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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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영화 ‘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일본의 안성기’라는 애칭으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이 영화로 지난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히라야마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해 영화 내내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과 함께 충혈된 눈으로 울고 웃는 마지막 2분간의 장면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사물의 상태’(1982), ‘파리, 텍사스’(1987), ‘베를린 천사의 시’(1993), ‘멀고도 가까운’(1993), ‘밀리언 달러 호텔’(2002) 등으로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영상미가 러닝 시간을 빈틈없이 채운다. 1970~1980년대 올드 팝이 중간중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에 맛을 더한다.

자막이 모두 올라간 뒤 일본어 ‘코모레비’에 대한 해설이 나온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로,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삶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장의 메시지가 담겼다. 124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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