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 바로 잡자” 가난하지만 뜨거웠던 역사학자들의 고군분투

“식민사관 바로 잡자” 가난하지만 뜨거웠던 역사학자들의 고군분투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10-28 07:00
수정 2022-10-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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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발행된 역사학 종합 학회지 ‘역사학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1952년 발행된 역사학 종합 학회지 ‘역사학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광복 이후 한국 역사학자들은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학회를 만들고 학회지를 발간하면 됐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다. 돈이 없었고, 전쟁이 터졌고, 자료가 부족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사학자들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조국이 전화(戰火)에 휩쓸려 지대(至大)의 환난(患難)가운데 있는 오늘날 앞날의 한국을 위한 역사학의 재건이야말로 당면초미(當面焦眉)의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고민한 그들은 6·25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 부산에 있던 서울대 문리과대학 임시교장에서 역사학회를 창립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한 역사학자들의 열정과 소명 의식을 회고하는 ‘광복 이후, 역사학계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의 변천’이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에서 전시되고 있다. 관람객들은 창간호 실물(9점)과 53개 창간호(제본), 역사학계 총 255개 창간호 총괄목록표를 통해 1940∼1950년대 역사 연구의 흐름과 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첫 역사학 종합 학회지인 ‘사해’(194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첫 역사학 종합 학회지인 ‘사해’(194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광복을 맞아 역사학자들은 활발한 활동을 통해 ‘식민사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역사학 연구방법론을 모색했다. 1945년 12월 조선사연구회와 역사학회가 창립돼 ‘사해’(1948), ‘역사학연구’(1949) 등이 발간됐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 연구도 6·25 전쟁 앞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쟁이 진행 중이었지만 역사학자들은 나라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했다. 연구 의지를 불타올랐지만 문제는 활동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는 점이다.

고민하던 이들에게 천운이 찾아온다. 역사학회 발기인 중 한명인 김철준 교수의 친형이 일본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김 교수가 일본에 갔다가 미국공보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미국공보원은 김 교수의 친형과 친분이 두터웠고, 무엇이든 돕겠다고 나서 학회 창립에 필요한 자금을 보태줬다.
첫 지역사 학술지 ‘향토서울’(1957).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첫 지역사 학술지 ‘향토서울’(1957).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역사학회의 창립 이후 역사학계는 활발하게 세부 연구가 진행됐다. 첫 분류사 학회지인 ‘역사교육’(1956), 첫 지역사 학술지인 ‘향토서울’(1957), 첫 분과 학회지인 ‘서양사론’(1958) 등은 역사학계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살피게 한다.

실물 전시가 10건이고 나머지는 키오스크를 통해 볼 수 있는 작은 전시지만 강연과 함께 알찬 행사가 준비됐다. 28일에는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사 관련 학회지의 흐름을 짚는다. 다음 달 4일과 11일에는 도현철 연세대 사학과 교수,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각각 강연자로 나선다.

남희숙 관장은 “마침 금년이 역사학회 창립과 창간호 발간 70주년이며 전국역사학대회 개최 65회째인 뜻깊은 해”라며 “광복 이후 초창기 역사학자들의 열정과 역사적 소명을 본받아 사실(史實)에 기초한 균형잡힌 국립근현대사박물관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11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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