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별세…시대 아픔 담아낸 거장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별세…시대 아픔 담아낸 거장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1-01-05 23:06
수정 2021-01-0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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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별세한 김창열 화백은 50년간 영롱한 물방울 속에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담아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의 작품은 예술성과 대중성 면에서 모두 극찬받았고 고인은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연합뉴스
5일 별세한 김창열 화백은 50년간 영롱한 물방울 속에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담아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의 작품은 예술성과 대중성 면에서 모두 극찬받았고 고인은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연합뉴스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 5일 별세했다. 92세.

김창열 화백은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실제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물방울에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간이 겪는 상처의 고통과 아픔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현대미술에 큰 자취를 남겼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열여섯 나이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전쟁 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고인은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1957년 박서보, 하인두, 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세계무대로 눈을 돌렸다. 1961년 파리 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대학 은사였던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했다.

1970년 파리 근교의 마구간을 작업실 겸 숙소로 쓰던 고인은 평생의 반려자가 된 현 부인 마르틴 질롱 씨를 만났다.

고인을 대표하는 작업인 ‘물방울 회화’는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처음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유럽 화단에 데뷔하면서 출품한 ‘밤의 행사’(Event of Night)를 시작으로 물방울 소재 작품 활동을 50년 가까이 이어왔다.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함축한 물방울 회화로 고인은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뒤 대학 시절에 발발한 6.25전쟁은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작품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총을 맞아 구멍 뚫린 형상을 표현한 ‘상흔’, 사람이 찢긴 듯한 이미지를 담아낸 ‘제사’라는 초기 작품뿐만 아니라 물방울 작품에도 전쟁의 아픔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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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화백의 ‘물방울’(1974).  김창열미술관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1974).
김창열미술관
고인은 물방울의 의미에 대해 “시대의 상처를 내포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총 맞은 육체를 연상시키는 전쟁 직후 작업에 대해 “그 상흔 자국 하나하나가 물방울이 됐다”고 했다.

그는 “물방울은 가장 가볍고 아무것도 아니고 무(無)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 상흔 때문에 나온 눈물이다. 그것보다 진한 액체는 없다”고도 했다.

고인은 국립현대미술관, 드라기낭미술관, 사마모토젠조미술관, 쥬드폼므미술관, 중국국가박물관, 국립대만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차례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각종 아트페어나 경매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2016년 3월 K옥션 홍콩경매에서 ‘물방울’(195×123cm, 1973년작)은 5억 1282만원에 낙찰됐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고인의 작품이 있다.

김창열 화백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 제주도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제주도는 고인이 한국전쟁 당시 1년 6개월 정도 머물렀던 인연으로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곳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실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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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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