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眞我를 찾아… 공초와 맞닿은 詩세계
어둠 속에 묻혀가는 내 나라의 정신을 일깨우고 모국어의 새벽을 열었던 선각(先覺)이시며 무이이화(無而以化)의 구도자이셨던 공초(空超) 오상순 선생이 열반을 하신 지 올해로 50주기를 맞는다. 그 대덕(大德)과 시정신을 기리는 공초문학상 21회 수상작으로 유안진 시인의 ‘불타는 말의 기하학’(시집 ‘걸어서 에덴까지’·2012 6월 문예중앙)를 심사위원 전원 합의로 선정하였다.유안진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한국시의 한가운데서 새 물이랑을 일으키며 특유의 감성과 문체로 서정성의 회복과 시대적 사유의 깊이를 언어로 조탁하여 왔다. 수상작 ‘불타는 말의 기하학’은 파스칼의 어록을 인용한 글제로 ‘자아’에 대한 성찰을 치밀한 구도로 그려내고 있다. ‘내가 정말 난가?’의 지극히 평범한 스스로에게의 물음에 ‘나는 나 아닌 때 가장 나인데’의 대답이 사뭇 공초적(空超的)이다.
시인은 ‘시가 무엇인가’란 화두를 깨치기 위해 쓰고 또 쓰는 고행을 한다. 그 높은 산맥과 검은 강을 건너서 비로소 만나는 한 줄기 빛! 유안진 시인은 “불타고 난 잿더미가 가장 뜨건 목청”이라고 정의한다. 공초가 ‘허무혼의 선언’에서 “다 태워라/물도 구름도/흙도 바다도/별도 인간도/신도 불도 또 그 밖에”라고 갈파한 것에 맞닿지 않는가.
일찍이 누천년의 현철들이 시를 일러왔으되 그 구경(究竟)을 꿰뚫은 이는 아직 없다. 이 천착(穿鑿)의 오랜 노동으로 “손톱 발톱에서 땀방울이 솟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본다. 이 땅의 시인들이 경작한 지난 한 해의 수확에서 타고 남은 재 속의 사리(舍利)를 찾아낸 기쁨이 크다.
심사위원 임헌영·도종환·이근배
2013-06-05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