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로봇이 간병인 역할잔잔하면서 아련한 아픔 실어내
기본적인 관심은 히라타 오리자 작품이라는 데 있다. 그는 국내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작가 겸 연출가이다. 일본 밖으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조용한 연극’ 덕이다.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 ‘도쿄 노트’ 같은 작품들은 한국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생겼다. 연극에 안드로이드(인조인간)가 출연하기 때문이다.용산구 서계동의 국립극단 내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 위에 4일과 5일 양일간 올려졌던 ‘사요나라’가 그 작품이다.
극 속의 상황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아픔이 배어 있다. 연극은 두 개 이야기로 나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인조인간 제미노이드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여자를 위해 시를 읽어준다. 다니카와 순타로, 아르튀르 랭보, 칼 붓세, 시마자키 도손, 와카야마 보쿠스이 등 유명 시인들의 시다. 죽음을 앞둔 여자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용기를 북돋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들이다. 여자는 간혹 질문을 한다. 시인이 누구냐, 어느 나라 시인이냐, 지금의 내 기분에 맞는 것이냐? 등등. 여자는 “너(로봇)는 이 세상에 몇 대나 있어?”라고 묻기도 한다. 죽어가는 여자, 그녀를 위해 시를 읽어주는 로봇 사이의 대화는 조용하고 일상적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인조인간 제조사의 AS 직원 겸 로봇 운반을 담당하는 듯한 남자와 제미노이드의 장면이다. 남자는 제미노이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해 전화를 통해 상급자에게 보고를 한다. 고장난 듯 했던 제미노이드는 목 뒤의 작동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켜자 정상에 가까운 기능을 한다. 대화가 가능함을 파악한 남자는 제미노이드에게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아무도 없는 곳”이다. 대지진과 함께 원전사고가 난 지역 후쿠시마의 재난 중심지역이다. “거기서 계속 시를 읊어줬으면 좋겠어.” 남자는 말한다. “네.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전 기뻐요.” 제미노이드의 대답이다.
극 속에 아림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로봇인 제미노이드가 가장 ‘인간적인’ 정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장 이유를 탐문하는 남자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몰라요”라고 얘기한다. 후쿠시마로의 이동을 위해 남자의 어깨에 실린 제미노이드는 자신의 현재 상황과 심리를 연상케 하는 듯한 시를 읊는다. “이름도 모르는 머언 섬에서/떠내려 오는 야자열매 하나/고향의 기슭을 떠나/그대는 대체 파도 위를 몇 달인가”.
’조용한 연극’의 축소판 같은 작품이다. 제미노이드가 잔잔한 목소리로 읊는 유명 시인들의 시를 음미하는 맛이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온전한 연극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모자람이 있는 것 같은 연극이다. 두 개의 에피소드를 공연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2분. 그 모자란 부분은 배우 겸 인조인간의 연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충분히 채워진다. 인조인간의 얼굴빛은 좀 창백한 편이며 간병인 역할을 할 뿐 오히려 느낌은 죽음을 앞둔 환자 같다. 말을 할 때 입놀림을 하고, 눈을 깜박거리며, 얼굴을 가볍게 움직이는 정도의 움직임을 하는 수준의 연기를 한다.
인조인간을 연극에 출연시키는 것은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이 세계 최초이다. 그는 5년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연구센터인 오사카대학과 함께 로봇배우 연구를 시작했으며 3년 전 ‘사요나라’의 전반부를 만들었다. 이어 후쿠시마 지역 대지진이 발생한 후 지난해 이 작품의 후반부를 완성했다. 이 외에 체홉의 ‘세자매’를 일본 상황에 맞게 번안해 만든 작품에 이리나 역으로 안드로이드를 기용하는 등 지금까지 로봇을 출연시켜 만든 작품이 넷이 있다. 이들 작품들은 그간 일본은 물론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 유럽과 러시아, 대만 등 여러 곳의 축제 행사 때 현지의 관객들에게 선보였었다.
그는 지난 4일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배우로봇 개발과 관련된 여러가지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박물관이나 엑스포에서 볼 수 있는 인조인간은 흥미를 줄 수는 있지만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면서 “감동을 주는 로봇, 예술작품으로서의 로봇을 만드는 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현대예술제 ‘페스티벌 봄’ 해외초청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