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협의 없이 임원 인사안 발표한 게 결정타
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김재철 사장 해임안 가결은 여야 측 이사들 간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이날 이사회에서 전체 이사 9명 가운데 5명이 해임안에 찬성했고, 4명이 반대했다. 김 사장 퇴진을 줄곧 요구해 온 야권 이사 3명 말고도 여권 이사 2명이 해임안에 찬성한 셈이다.
지난 22일 김 사장이 방문진과 사전협의 없이 계열사 임원 인사 내정자를 전격 발표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독단적 행동이 자신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당시 김 사장은 김문환 신임 방문진 이사장과 따로 만나 인사안을 전달했을 뿐 이사회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방문진 이사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이튿날 여야 추천 이사 6명 명의로 해임안을 발의했다.
이사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김 사장이 방문진의 관리감독권을 기만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임안에 소극적이었던 한 여권 이사조차 이날 이사회에서 해임안 처리를 미루는 것은 책임방기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측 최강욱 이사는 “오늘 의결 과정에서 이사회가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방향으로 이사회를 진행하자고 얘기했다”며 “표결 이후에도 감정적인 발언이나 불만을 토로하는 식의 언행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김재철 사장은 이날 해외 출장을 취소하고 이사회에 출석해 “이사장이 양해하고 동의한 것으로 해석했다”며 “관리지침 절차 위배를 인정한다”고 사과했지만 이사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해임안이 통과된 배경에는 그간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 업무보고에 불출석하고, 이사회와 협의 없이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논의를 추진하는 등 방문진의 권한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온 점도 한몫했다.
과거 해임안이 세 차례 부결되긴 했지만 여권 이사들조차 김재철 사장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끊이지 않은 자질 논란 역시 해임안 가결에 영향을 미쳤다.
김 사장은 재임 기간 각종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취임 초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으로 ‘낙하산 논란’을 불러온 김 사장은 취임 한 달 만인 2010년 3월 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의 이른바 ‘큰집’ 발언의 당사자로 거론되며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듬해 7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진주.창원 MBC 통폐합 승인을 보류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방문진에 사표를 제출했다 방문진이 재신임하는 해프닝도 빚었다.
작년 초 불거진 법인카드 유용과 무용가 J씨에 대한 특혜 의혹은 자격 논란을 부채질했다. 또한, 작년에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참해 법원에서 벌금형까지 선고받았다.
파업 대처 방법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김재철 사장은 작년 파업과 관련해 8명을 해고하고, 노조를 상대로 19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정치권의 기류 변화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출범 전후로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 방송언론계 인사들이 잇따라 사퇴했고, 지난 13일에는 김 사장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마저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이사장의 사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공기관 인사 ‘물갈이’를 예고한 직후 나와 눈길을 끌었다.
김 사장은 경영 실적에선 일부 성과를 내기도 했다.
김재철 사장의 취임 2년째인 2011년 MBC 본사는 사상 최대인 9천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사상 최고 수준인 800억 원대 당기 순이익을 올렸다. 최근에는 일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호조를 보이면서 평균 시청률이 상승세를 타기도 했다.
사측은 이런 이유로 MBC의 경쟁력 약화가 김재철 사장의 경영 실패가 아닌 노조의 강경한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MBC 고위 관계자는 “사장이 세부적인 관리지침을 몰라 실수한 것인데 해임까지 이르게 돼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사장은 임기 만료 11개월을 앞두고 방문진이 해임한 최초의 사장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MBC를 떠나게 됐다.
1988년 방문진이 설립된 후 MBC는 김재철 사장을 포함해 9명의 사장이 거쳐갔는데 이들 가운데 故 이득렬, 이긍희, 최문순 등 3명 만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전임 엄기영 사장을 포함해 5명은 중도 사퇴했다.
해임은 김재철 사장이 처음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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