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놓치면 바보라고 생각…아들이 ‘검색어 1위’라네요”
서울 숭의여중 3학년 때 남산 인근 사무지구에 불우이웃돕기 과자를 팔러 다니다가 프로덕션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1985년에도 ‘길거리 캐스팅’이 있었던 모양이다. 고교시절 내내 유명 제과업체의 전속모델로 일했다. 대학생(단국대 연극영화과)이 된 뒤로는 의류, 화장품, 전자제품 모델을 섭렵했다. 지금은 낯설어진 ‘하이틴 스타’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충무로와 광고계를 휘젓던 1995년 1월 덜컥 결혼했다. 나이 스물여섯. 남편의 미국 유학길을 따라갔다가 2년 반쯤 흐르고서 돌아왔지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알고 지내던 감독들은 사라졌고, 젊은 감독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일단 육아와 TV 드라마에 집중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1년, 2년 흐르더니 17년이 훌쩍 지났다.
김혜선은 “나도 평생 이런 작품 하게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두 번 헤어지는 아픔을 겪은 그는 얼마 전 세 번째 사랑을 공개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영화가 야하다.
-나도 평생 이런 작품을 할 줄 몰랐다(웃음). 지인들도 난리다. 시사회 끝나고 파티에 임창정씨가 왔는데 “지금껏 본 외국영화, 한국영화 통틀어 제일 야하다. 박수를 보낸다.”고 하더라. 본의 아니게 센세이션을 일으켜 죄송한데, 후회는 없다.
→1990년대의 하이틴스타, 2000년대의 단아한, 때론 억척스러운 김혜선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충격적이다.
-제안이 안 들어왔다면 모를까 놓치면 바보라고 생각했다. 소속사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배우라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보여줄 수 없었던 이미지 변신을 하는 게 내 경력에도 한번쯤 필요했다.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수락했나.
-3월 말쯤 박현수 감독이 시나리오를 건넸다(시나리오를 받은 것도 17년 만이라고 했다). 별 생각 없이 재미있게 읽었는데 얼마 뒤 박 감독이 전화를 했다. 시나리오 준 게 언젠데 답이 없냐더라. 20살 연하의 제자와 사랑을 나누는 한식연구가 ‘희숙’ 역을 하라는 거다. 그때부터 색깔 펜을 들고 야한 부분에 줄을 그어가며 다시 읽었는데 온통 알록달록하더라(웃음). 감독을 만나서 이런 걸 안 찍어봐서 자신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감독이 “나도 벗는 영화 안 찍어봤다. 서로 처음이니까 의지하면서 찍어보자.”고 하더라.
→어린 자녀도 신경쓰였을 텐데.
-큰아들이 중3이다. 촬영을 결심한 날, 앉혀놓고 얘기했다. 엄마한테 ‘19금’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네가 볼 수는 없지만 축하할 일이라고(웃음). 40대 여배우 아무에게나 들어오는 역할이 아니라고, 여자로서의 느낌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아니면 돈을 내고도 못 찍는다고 했다. 한참을 듣더니 ‘엄마, 축하해.’라고 하더라. 어릴 때부터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나눴고, 서로 존중하며 살았다. 짓궂은 친구들이 놀리더라도 ‘우리 엄마는 배우니까 못 찍을 영화는 없어.’라고 의젓하게 대꾸할 아이다. 며칠 전 인터넷에 그 일이 나왔을 때도(몇 년 전 이혼한 그는 같은 처지인 장현수 영화감독과 3년째 열애 중이다) 아들은 “엄마,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야.” 하고 말하더라. 딸은 겨우 일곱 살이니까 나중에 크면 얘기해줄 생각이다.
→캐릭터의 어떤 점이 그렇게 끌렸나.
-존경받는 한국 전통요리 연구가인데 뒤로 돌아서면 성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지닌 이중성이 흥미로웠다. 그것도 스무 살 어린 제자와 그렇다는 설정이 짜릿했다. 몇몇 장면들은 분명 과장됐다. 하지만 다소곳한 사모님인데 뒤에서는 번호를 따고 다닌다든지, 그런 이중성은 종종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실에서도 꼬리를 치고 다니는 여자라면 들통날까 봐 못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출연을 결정했다(웃음). 여배우들이 노출장면 찍을 때 예민해지고 실랑이도 한다던데 난 빨리빨리 찍고 끝내자고 했다. 촬영 전날 밤새 뒤척이다가도 막상 실전에서는 재미있게 찍었다.
→몸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3개월 동안 죽기 살기로 10㎏을 뺐다. 노출 장면이 6월 초에 엿새 동안 몰려 있었다. 그때가 지나니 바로 3㎏이 불더라.
→수십 편의 드라마를 찍었지만 ‘조강지처클럽’(2007) 이후 다른 배우가 된 것 같다.
-배우 김혜선이 다시 태어나는 시발점이 됐다. 이전까지는 얌전하고, 우아한 역할, 남자를 뺏겨도 아픔을 삭이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조강지처클럽’의) 생선장수 한복수는 억척스러울뿐더러 가슴에 담아두지 않고 내뱉는 역할이었다. 처음에는 미스캐스팅이라고 SBS 간부들 사이에서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김혜선이 생선장수를 어떻게 하느냐고. 선생님(문영남 작가, 손정현 연출)들이 ‘배우가 어느 시점에선 한 문턱을 넘겨야만 한다.’고 하셨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대본 안에 답이 있더라. 한번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끄집어내니까 신이 나고, 자신감도 붙고, 연기하는 재미도 깨달았다. 안 해본 연기에 대한 희열이랄까. ‘조강지처클럽’을 해냈기 때문에 이번 영화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영화에 욕심을 내볼 텐가.
-이왕 칼을 꺼냈으면 두부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나. 난 1980년대 남산 영화진흥공사 시절 배우협회증도 있는 영화배우 출신이다. 요즘 신인배우들과 급이 다르다(웃음). 꾸준히 한두 작품씩 하고 싶다. 진짜 탐나는 역할은 ‘오아시스’의 문소리씨 역할(중증뇌성마비장애인) 같은 건데 안 시켜주니까 문제다. 오늘 시나리오가 하나 들어왔는데 연하남과의 멜로더라. 약간 액션도 있고. 야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1-11-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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