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지진 참사 10주년]
Paul Christandro poses for a picture inside of Notre Dame de l‘Assomption Cathedral (Our Lady of the Assumption), destroyed in 2010 earthquake, in Port-au-Prince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주민이 10년 전 대지진으로 무너진 성당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연합뉴스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연합뉴스
정부 “있지도 않은 시설에 다 썼다” 보고서
대통령은 “10년간 복구 진전 없었다” 인정
트라우마 주민에 정부부패, 생활고, 전염병
2010년 오늘(현지시간 12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30초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발생한 규모 7.0 지진은 나라 전체를 10년간 악몽으로 몰아넣었다. 일주일 새에 7만명이 매장됐으며, 이후 수십만 명이 이들을 따라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이 나라 역사는 지진 전과 후로 나뉘게 됐다. 지진 이전의 역사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이긴 노예혁명의 자존심으로 독재와 침략에 저항한 역사다. 이후 역사는 아무것도 적지 못한 빈 종이다. CNN은 지진 뒤 10년이 흐른 아이티를 찾았다.
희망은 있었다. 당시 현장 기사를 소화한 CNN 산제이 굽타는 “세계 모든 곳은 아니지만, TV를 켜거나, 신문을 펼치거나, 동료와 얘기를 나눌 때 항상 아이티에 대한 지지와 연민이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뉴욕시에선 소방관이, 아이슬란드에선 구조대원이, 이스라엘에선 병원 천막이 왔다. 중국은 구조견을 보냈고 베네수엘라는 연료용 기름을 보냈다. 아이티와 다른 국가 사이에 연대가 확산되며 주민들에게 희망을 줬다. 이미 아이티에 들어와 있던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을 뛰어다니며 행동에 들어갔다.
Two men who were wounded during 2010 earthquake, observe a minute of silence during commemorations for the tenth anniversary of the quake in Port-au-Prince
10년 전 아이티 대지진으로 다리를 잃은 두 남성이 12일(현지시간)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추념식 도중 묵념하는 모습.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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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절망은 더 컸다. 지난 11일 조베넬 모이즈 대통령은 아이티가 10년 동안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는 성명에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를 부양할 기본 인프라와 서비스가 부족하다”면서 “지진 이후 재건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이 비극적 사건의 상처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정부 청사인 국립궁전을 포함해 2010년 파괴된 뒤 아직도 복구되지 못한 곳이 즐비하다. 재건된 건물들도 혹시 또 지진이 났을 때 주민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견고한지 알 수 없는 상태다.
CNN는 아이티 주민들이 10년간 자연재해와 정치 재해를 모두 겪으면서 정신적, 정서적으로 재건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지진 뒤 사지를 잃은 환자나 참상을 목격한 사람들과 함께한 현지 심리학자 마르라인 나로미 요셉은 “시체가 트럭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면서 “몇년 동안 길을 걸을 때마다 이 길에서 인부들이 시신을 아이와 어른으로 분류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남의 정신 외상을 치료하는 자신조차 외상 환자였다는 증거다.
Crosses are seen on the top of a hill near the memorial for the 2010 earthquake in Titanyen, on the outskirts of Port-au-Prince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수많은 희생자를 매장한 포르토프랭스 인근 티탄옌 언덕 무덤 위에 12일(현지시간) 십자가들이 서 있다.
포르토프랭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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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물가상승, 연료 부족으로 지진 발생 10주년 기념일엔 씁쓸한 좌절감만 드러났다. 프레빌 박사는 “지진 10년 뒤 내과 의사인 나는 210개 병상을 보유한 의료시설의 최고 경영자지만, 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 재해구제기구(OCHA)에 따르면 아이티 물가 상승은 이제 가난한 사람은 기본적인 물품조차 살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아이티인 40%는 오는 3월까지 식량 불안정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10%는 식량 불안정이 긴급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모이즈 대통령은 성명에서 “초기에 받았던 국제적 관심은 순식간에 잠잠해졌고 당시 금융 공약은 상당 부분 답지하지 않았다”면서 “받은 원조 중 아이티인 손에 전달된 것은 극히 일부이며, 그 많은 돈은 제대로 된 사업과 장소에 쓰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Haiti commemorates 10 years since earthquake
성난 아이티 반정부 시위자들이 12일(현지시간)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열린 대지진 10주년 추념식에서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 욕을 하는 모습.
포르토프랭스 EPA 연합뉴스
포르토프랭스 EPA 연합뉴스
아이티는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부패 대응에 관한 문제로 약 2년간 시위를 겪었다. 시위는 연료 가격 인상 불만으로 일어났지만 대규모로 폭발한 것은 과거 정부 때문이다. 전 정부는 기간시설 건설 사업에 수백만 달러를 낭비하고, 건설되지도 않은 도로와 건물에 대해 대금이 지불된 것처럼 조작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아이티는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카리브 해에서 아이티는 허리케인 벨트 한가운데에 있다. 아이티 경제 연구자인 엣저 에밀은 “만약 아이티 재건이 성공적이었다면 훌륭한 사례 연구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겠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프레빌은 “여전히 사람들이 발 밑에서 땅이 움직이는 느낌을 떠올리는 아이티에 다시 한 번 지진이 오면 최악의 악몽이 될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난 일단 책상 밑에 숨었다가 내 비상 계획대로 바로 출발해 가능한 많은 사람을 구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까”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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