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배상’ 한일갈등, 치킨게임으로 치닫나

‘징용배상’ 한일갈등, 치킨게임으로 치닫나

입력 2013-11-07 00:00
수정 2013-11-0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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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재계 ‘배상거부’ 공동전선…타협책으로 공동재단설립안 거론

정해진 결론을 향해 시계 바늘은 돌고 있지만 도무지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한일관계의 뇌관으로 부상한 강제징용 배상 문제다.

독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더해 새로운 한일 갈등 요인으로 부상한 이 문제는 일본 기업 약 300개가 결부돼 있는 까닭에 양국 외교는 물론 경제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사안으로 평가된다.

지난 7월 서울고법과 부산고법이 각각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데 이어 지난 1일 광주지법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대(對)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에서 역시 배상을 명령했다.

피고 기업들이 불복절차를 밟았기에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이 남아있지만 작년 5월 대법원이 배상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한 만큼 결론은 이미 나온 사안이라는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일본 기업들이 순순히 판결을 수용할 가능성은 6일부로 희박해졌다. 한국의 전경련과 유사한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등 주요 4개 경제단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 사법부의 배상 판결이 한일 경제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함으로써 정부와 공동전선을 펼 뜻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일본 산케이 신문에서 배상 소송의 피고기업 중 하나인 신일철주금 측이 한국 판결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그 직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기업들과 연락을 취해 일치된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기시다 외무상의 발언대로 일본 정부와 재계가 ‘단일대오’를 형성한 모양새다.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신일철주금의 무네오카 쇼지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지출을 하면 주주대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쐐기를 박았다. 또 한 일본 기업의 법무 담당 간부는 닛케이에 “사법제도의 안정은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며 “여론때문에 사법 판단이 흔들리면 한국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보수 매체들은 한국 법원의 판결을 반한(反韓) 여론을 부추기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인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묻혀졌던 개인의 권리가 민주화된 2010년대에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는 등의 판결 배경을 소개하는 일부 진보성향 매체도 있지만 대다수 매체는 우려와 비판 일색이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다소 애매하다.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 있기 전까지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원폭 피해자 문제와 위안부, 사할린 동포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 만큼 별도로 배상하라고 일본에 요구하면서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현재 외교부는 “진행중인 사법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고 일본 기업들이 판결에 응하지 않으면 한일간 외교적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 정부가 법대로 일본 원고 기업의 한국내 자산을 압류하고, 일본 측은 청구권 협정을 근거삼아 한국 정부를 상대로 대신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문제를 가져가려할 수 있을 것으로 외교 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결국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 갈등이 잘못 관리될 경우 한일간 외교 갈등은 물론 일본의 대 한국 투자 및 양국간 교역 감소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무역 규모 면에서 작년 기준으로 일본은 한국의 제2위 교역국이고, 한국은 일본의 제3위 교역국이다. 또 일본의 대 한국 직접투자 규모가 작년 기준 45억5천만 달러(약 4조8천억원)로 집계된데서 보듯 한국은 일본의 최대 투자처가 되고 있다고 닛케이는 보도했다.

최악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타결책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배상을 위한 한일 공동 재단설립안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출자해 재단을 만든 뒤 일본 정부 및 기업의 동참을 요구하는 방안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 측을 중심으로 제기될 수 있는 한일청구권 협정 무효화 논란을 피함으로써 법적 안정성도 도모하고, 법원의 판결에 담긴 시대정신도 존중하는 차원의 해법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측이자 소송의 원고 측인 한국 쪽에서 먼저 대승적으로 해결의지를 보임으로써 다른 갈등 사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압박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상당한 재정부담과 반대여론에 따른 정치적 리스크 등을 감안할때 실현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검토가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 강제징용 배상 소송에 관여해온 장완익 변호사는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위해 한일 정부와 피해자, 일본 기업 등 4자가 모두 모여 진지한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며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이 존중된다면 피해자들이 합리적인 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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