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일에 쓴 일지 공개’일본 잘못했으나 근본 원인은 서구’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 전투기 개발자를 다룬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 감독의 최신작 ‘바람 불다’(風立ちぬ)의 모델인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1903∼1982)가 일본 패전일인 1945년 8월15일에 쓴 일지가 공개됐다고 도쿄신문이 1일 보도했다.호리코시의 집 다락방에서 발견된 편지지 두장 분량의 이 일지에서 그는 “일본의 군부와 그와 연결된 정치가가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 무력에 호소하는 등 성마르게 행동한 것이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었나”라며 군국주의 세력에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세계가 우리의 자유로운 교역을 허락하지 않으면 피폐에서 다시 일어설 수 없다”며 “선진 서구국가의 블록 경제 원리가 (전쟁의) 근본 원인은 아니었나”라며 전쟁전 일본에 각종 무역제재를 가한 서방 국가들에 화살을 돌렸다.
호리코시는 이어 “전승국 국민도 일본 국민도 이런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앞길에는 장기간에 걸친 경제, 도덕의 혼란이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한 뒤 “일본에 파괴를 몰고온 정책을 지도해온 사람들이 전부 떠나지 않으면 부패의 씨앗은 남는다”며 “성실하고 예지력있는 애국의 정치가가 나오는 게 소원”이라고 썼다.
이 글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가미카제’ 공격에 쓰인 전투기 제로센의 기체 그림, 개발과정에서의 실험기록 등과 함께 도쿄 도내 호리코시의 집에 보관돼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 편지는 사이타마(埼玉)현내 항공 관련 기념관에서 다음달 1일까지 진행되는 호리코시 관련 전시회에서 공개되고 있다.
’최고의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호리코시의 꿈과 연애담을 다룬 ‘바람 불다’는 지난달 20일 일본 전역에서 개봉해 절찬리에 상영중이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의 인생관이 녹아있는 역작이라는 찬사에서부터 ‘주인공이 만든 전투기가 일본 군국주의의 도구로 쓰인데 대한 비판적 인식이 심도있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지적까지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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