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반젤리스 ‘불의 전차‘ 타고 저하늘로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반젤리스 ‘불의 전차‘ 타고 저하늘로

임병선 기자
입력 2022-05-20 09:39
수정 2022-05-2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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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밤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19일 알려진 그리스 작곡가 반젤리스 파파타나시우가 지난 2001년 6월 28일 그리스 아테네의 고대 아테네 제우스 사원에서 열린 콘서트를 마친 뒤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EPA 자료사진 연합뉴스File)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밤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19일 알려진 그리스 작곡가 반젤리스 파파타나시우가 지난 2001년 6월 28일 그리스 아테네의 고대 아테네 제우스 사원에서 열린 콘서트를 마친 뒤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EPA 자료사진 연합뉴스File)
‘불의 전차’가 하늘로 달려갔다.

1924년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선수들의 우정을 그린 1981년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의 주제곡을 만든 그리스 음악인 반젤리스가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밤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79년 삶을 접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변호사 사무실이 뒤늦게 19일 성명을 발표, 고인이 코로나19 치료를 받다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고 EPA 통신이 전했다.

영국 BBC는 각계 인사들의 추모를 전했다. 이 영화 제작자 로드 푸트넘은 고인이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를 통해 아내와 함께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를 회상한 적이 있다.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곤두선 느낌이었다.”

미국 작곡가 오스틴 윈터리는 트위터에 반젤리스야 말로 “한 시대의 음악을 통째로 바꿨다”고 아쉬워했다. 오스카 후보로도 오른 영국 음악인 대니얼 펨버턴은 고인이 현대 영화음악에 미친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얼마나 ‘불의 전차’가 획기적이었는지 이해하기 무척 힘들다. 기적과 같은 신서사이저 음조로 영국 영화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도 트위터에 애도를 표하며 고인을 “전자음악의 선구자”라고 표현한 뒤 “그는 불의 전차를 타고 긴 여행을 시작했다”고 적었다.

본명이 에방겔로스 오디세아스 파파타나시우인 반젤리스는 지난 반세기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연주자와 작곡가로 명성을 쌓았다. 화가인 아버지와 음악을 공부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젤리스는 정규 음악수업을 받지 않고 여섯 살에 작곡을 하고 피아노 콘서트를 열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들었다. 그의 ’비정규‘ 음악활동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특이하게도 대학 전공은 음악이 아닌, 미술을 택했다. 예술 분야에서 그리스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아테네예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그는 1988년 그리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음악적 창의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비와 눈물’(Rain and Tears),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등으로 1970년대 한국 팝음악 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그리스의 3인조 록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멤버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반젤리스가 키보드를, 데미스 루소스가 보컬을 맡았다.

꾸준히 정규 앨범을 내면서 TV·연극·무용 등을 넘나들며 음악적 재능을 선보인 그는 특히 영화음악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는데 ‘불의 전차’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이듬해 제54회 아카데미영화제 작곡상은 물론 같은 해 빌보드 앨범·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지금도 그리스 유일의 오스카 수상자로 남아 있다. 이음악은 지난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메달 시상식에 흘러나왔다.

반젤리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 ‘1492 콜럼버스’(1492: Conquest of Paradise and Alexander, 1992년) 등에서 선보인 주제곡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고인은 한때 이런 얘기를 했다. “내 관심은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나아가고 싶었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런 비슷한 뭔가를 창안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우리에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공식 주제곡 ’축가‘(Anthem)의 작곡가로도 기억된다. 이 곡은 개막식은 물론 선수들의 입장 때마다 경기장에 울려 퍼져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과 2004년 모국에서 개최된 아테네 하계올림픽의 주제곡 작업에도 참여했다.

어릴 적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유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출연한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1980년 방영)의 음악을 맡았고, 2001년 미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화성 탐사선 ‘2001 마스 오디세이’의 테마 음악을 만들었다. 2018년 타계한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장례식에선 재생장치로 재현한 고인의 음성을 기반으로 만든 장송곡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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