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많이 찾는 복합리조트…고객·직원들 ‘공포의 도가니’
자정을 막 넘긴 2일 새벽(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외곽에 있는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인근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갑작스러운 총성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카지노 게임에 열중하던 고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다.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라는 외침도 나오면서 공포감이 증폭했다.
필리핀 경찰에 따르면 괴한이 ‘리조트 월드 마닐라’(RWM) 2층에 차를 주차하고 곧바로 근처 카지노로 들어갔다. 복면하고 M4 소총으로 무장한 이 남성은 카지노의 대형 TV 스크린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테이블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당시 카지노에 있던 고객들과 직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피하기 시작했다. 카지노와 그 주변, 그 위층으로 자욱한 연기가 펴졌고 이들의 대피 과정에서 30명 넘게 질식사했다. 한국인 1명은 이 리조트에서 대피해 휴식을 취하다가 숨졌다. 사인은 일단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건물 외벽의 유리창은 깨지고 창틀은 열기에 의한 듯 휘어졌으며 그 사이로 이날 오전까지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RWM은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리조트다. RWM은 필리핀에서 최초이자 가장 큰 복합리조트로 카지노를 비롯한 각종 유흥, 쇼핑, 호텔 시설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곳은 4개의 고급 호텔과 고급 브랜드 매장, 컨벤션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이런 곳에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괴한에 의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 즉 ‘소프트 타격’ 공격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리조트의 직원 마리셀 나바로는 “휴식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일부 호텔 고객들이 ‘ISIS’(IS의 옛 이름)라고 소리쳤다”고 현지 라디오방송에 말했다.
사건 발생 직후 IS는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테러리스트 공격이라고 규정하며 희생자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IS 소행에 무게가 실리며 필리핀에 테러공포를 일으켰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IS 추종 세력이 활동하는 자국 남부지역에서 ‘IS와의 전쟁’을 벌이자 보복 테러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공포의 강도는 더 컸다.
계엄령이 선포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마라위 시에서 정부군과 IS 추종 반군 간에 교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테러로 볼 단서는 없다”며 국민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애썼다.
당시 범인이 카지노 고객들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았고 인질로 잡지도 않은 점, 물품 창고에서 1억1천300만 페소(약 25억5천만 원)어치의 카지노 칩을 훔친 점을 들어 테러보다는 강도에 무게를 뒀다.
그렇지만 IS가 필리핀에서 세력 확장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긴장을 늦추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필리핀에서는 남부 민다나오 섬을 거점으로 마우테, 아부사야프 등 크고 작은 IS 추종 반군들이 납치와 테러를 일삼고 있다.
마우테가 지난달 23일 민다나오 섬의 마라위 시에 침입해 주요 시설을 점검하고 불태우자 두테르테 대통령이 민다나오 섬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 토벌 작전을 벌이고 있다.
양측의 교전 과정에서 170여 명이 사망했다. 반군 사망자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예멘, 체첸 등 5개 국적의 외국인 8명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마우테와 해외 IS 단체가 연계해 필리핀에서 세를 키우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IS 위협이 필리핀 남부에서 중부, 북부로 확산하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어 테러에 대한 불안감을 씻기 힘든 상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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