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직계가족에 시신 인도 기한 부여…北에 인도 명분 마련
말레이시아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 김정남의 시신을 인계받을 길을 터준 데 이어 직계 가족의 시신 인도 기한을 못박고 나섰다.북한과 말레이 간에 김정남 암살사건 해결을 위한 공식회담이 조만간 열릴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말레이의 이런 조치는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넘기려는 사전 준비라는 관측도 나온다.
13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수브라마니암 사타시밤 말레이시아 보건부 장관은 김정남의 부인과 자식들이 2∼3주일 이내에 시신을 인도하기를 바란다며 가족이 시신을 인도하지 않으면 정부가 다음 단계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힐미 야하야 보건부 차관이 지난 11일 김정남의 시신을 얼마나 오래 보관할지 기한을 정해놓지 않았으며 더 시간을 두고 결정할 것이라며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나오지 않으면 말레이시아 내에 매장할 수 있다고 한 것과 비교할 때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말레이는 그동안 김정남 시신을 독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북한에 넘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며칠 전 직계 가족의 DNA 검사없이 간접확인을 통해 김정남임을 공식 확인한 바 있으며, 그걸 계기로 북한과의 물밑협상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시신이 김정남이라고 확인한 것은, 직계가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복형제인 김정은으로도 넘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지난 7일 북한의 억류 조치로 말레이 국민 9명이 북한에 체류 중인 상황에서 말레이는 이들의 조기 귀국을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협상 지연으로 이들의 귀국이 늦어지면 올해 조기 총선을 추진하는 나집 라작 말레이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현지 매체들도 말레이 국민의 조기 귀국을 촉구하는 논평을 잇따라 게재하며 말레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나집 총리는 북한과의 협상 창구를 단일화하고 협상 진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시신은 ‘김 철’이라며 김정남임을 철저하게 부인했던 북한도, 말레이 당국의 조처에 맞서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정남이 북한을 배후로 한 세력에 의해 유엔이 공식적으로 사용을 금지한 맹독성 화학가스제인 VX로 독살됐다는 말레이 당국의 발표에 반박하지 않음으로써 사건의 조기 종결을 노리고 있어 보인다.
양국 간에 갈등과 대립이 장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제재에 나서기 전에 사건을 무마하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시신 신원과 사망 원인을 두고 말레이와 다투기보다는 시신을 인도받고, 현재 말레이에 체류중인 사건 용의자인 현광성(44)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을 조기 귀국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
문제는 말레이가 북한의 요구를 어느 정도 선에서 수용할 지다.
지금까지 흘러나온 말레이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말레이 당국은 자국민의 안전 귀국을 요구하며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인도할 의지는 있어 보이지만, 김정남 암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현광성·김욱일을 쉽게 넘겨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건 발생 직후 체포했던 북한 용의자 리정철을 증거불충분으로 추방했고, 범행을 실행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 2명만을 구속 기소한 상태에서 김정남 암살사건에 대한 전모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을 인도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말레이가 수용하지 않으면 양국 공식회담이 무위로 끝날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이 말레이 국민 9명에 대해 특정 혐의를 걸어 형사처벌하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고, 말레이 역시 이미 출국 금지한 북한인 1천여명에 대한 대응 조치를 할 수 있어 양국 간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나집 총리가 12일 북한을 겨냥해 “말레이시아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고 경고한 데서도 양국 간 물밑협상이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히사무딘 후세인 국방부 장관은 이날 말레이시아가 국방 자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북한 같은 국가와 단독으로 싸울 수는 없다면서도 필요할 경우 북한과 싸울 충분한 동맹을 갖고 있다고 압박해 눈길을 끌었다.
양국 간에 공식회담이 열려 ‘원만한’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시신을 인도받은 북한이 자국에서 재부검을 실시해 VX 독살이 아닌 자연사라는 주장을 펼치며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피하려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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