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진영의 단일후보 추대 탄력 예고…크루즈와 ‘2위 다툼’ 치열
‘히스패닉계의 총아’로 불리는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이 공화당 대선 경선판에서 다시 한번 가능성을 입증했다.20일(현지시간) 열린 공화당 경선 3차 관문인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을 0.2%포인트의 근소한 표차(루비오 22.5%, 크루즈 22.3%)로 꺾고 2위를 차지하면서 주류 진영의 대표 주자로 다시 자리 매김하는 모습이다.
1차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강한 3위’를 기록해 단숨에 ‘트럼프 대항마’로 떠오르는 듯하다가 2차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5위로 밀려나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으나, 이번 3라운드에서 의미있는 승리를 거두면서 다시 반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부분 승자독식 제도에 따라 사우스캐롤라이나 대의원 50명 가운데 44명을 트럼프가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의원 확보 수를 떠나 그의 2위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루비오 의원으로 주류 후보를 단일화하려는 당 주류 진영에 충분한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주류 진영은 현재 트럼프로서는 본선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하에 루비오 의원을 노골적으로 밀고 있다.
루비오 의원이 지금처럼 선전하면 경선에서 1위를 하지 못하더라도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찰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주류 진영이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를 은밀히 검토하는 것도 이런 시나리오와 무관치 않다. 중재 전당대회는 예비선거에서 어느 주자도 대의원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대선 후보 지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당 지도부가 사실상 조정자 역할을 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제도다.
이제 관심은 루비오 의원이 이번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루비오 의원은 이른바 ‘3→2→1’ 선거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출발부터 1위를 차지하기가 어려운 만큼 아이오와 주에서 강한 3위를 기록한 뒤 뉴햄프셔주에서 2위로 한 단계 올라서고 이후 경선지에서 1위를 거머쥔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계획이 한 단계 늦어지긴 했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루비오 의원 쪽은 보수 성향이 높은 남부에서, 그것도 크루즈 의원의 주요 지지기반인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 비중이 높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크루즈 의원을 앞섰다는 점에서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더욱이 지지기반이 겹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중도 사퇴함에 따라 그의 지지표 중 상당수가 루비오 의원에게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부시 전 지사에게 자금을 댔던 ‘큰손’들이 루비오 의원 쪽으로 방향을 트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부시 진영의 선거자금 모금 책임자인 게이로드 휴에이는 “부시 전 지사에게 쏠렸던 자금줄이 자연스럽게 루비오 의원에게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시 전 지사에게 자금을 댔던 한 기부자도 “(부시 전 지사에게 향했던 선거자금이 루비오 의원 쪽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3명의 큰 손들도 부시 전 지사가 사퇴한 만큼 루비오 의원을 지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부시 전 지사를 지지했다가 지난해 여름 루비오 의원 쪽으로 돌아선 정치자금 로비스트인 브라이언 볼러드는 “부시 전 지사에게 돈을 댔던 큰 손 40명에게 루비오 의원을 도우라는 전화를 돌리고 있다”면서 “‘부시 자금’의 95%는 루비오 의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전 지사는 지난해 1억 달러(1천233억 원가량)에 달하는 적잖은 선거자금을 거둬들였다. 반면에 루비오 의원은 지난 1월 기준 확보해둔 실탄이 500만 달러(61억6천500만 원가량)에 불과해 ‘부시 자금’을 거머쥐면 숨통이 트이게 된다.
하지만, 크루즈 의원의 저력이 만만치 않아 그를 확실하게 제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일각에선 루비오 의원이 아직 ‘과연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3라운드까지의 객관적 전적은 아이오와에서 1위를 기록한 크루즈 의원이 앞선다.
더욱이 주류 진영의 ‘루비오 만들기’에 맞서 크루즈 의원이 자신의 지지기반 확대에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여 두 주자 간 2위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루비오 의원은 주류 진영에 자신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고, 크루즈 의원은 이런 기류를 잠재우려면 루비오 의원을 확실하게 꺾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루비오-크루즈 3파전 구도 속에 루비오·크루즈 두 의원의 2위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수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와 루비오, 크루즈 간의 3파전이 된다면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33%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는 나머지 두 사람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함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정치 전문지 ‘뉴 리퍼블릭’은 주류 진영의 루비오 밀어주기와 관련해 “공화당 지도부가 루비오 의원을 선택하려 한다면 그동안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부터 궁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두 주자의 첫 시험대는 4차 경선지인 23일 네바다 코커스와 3월 1일 슈퍼화요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결과에 따라 두 사람의 명암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루비오 의원은 이날 지지자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이 나라는 우리를 21세기로 이끌 새 세대의 보수주의자를 맞을 준비가 됐다”며 자신이 ‘21세기 보수운동’의 상징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크루즈 의원은 연설에서 워싱턴 제도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자신이 “부상하는 보수 풀뿌리”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두 주자는 공교롭게도 똑같은 히스패닉계 후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쿠바 이민자의 아들인 루비오 의원은 변호사를 거쳐 플로리다 주 하원의장을 지낸 인물로, 2009년 공화당 소속 멜 마르티네스 상원의원의 조기 은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출마해 당시 찰리 크리스트 주지사를 꺾는 이변을 연출해 내고 단숨에 전국적 인물로 급부상했다.
명문 프린스턴과 하버드대를 나온 크루즈 의원 역시 쿠바계로, 아버지가 스페인계 혈통의 쿠바인이고 어머니는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피가 섞인 백인 미국인이다. 본인은 1970년 12월 캐나다 앨버타 주 캘거리에서 태어났다. 히스패닉 사상 최초의 대법원장 보좌관, 사상 최연소 및 첫 히스패닉 법무차관을 거쳐 2012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