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아무 감흥 주지 못해”
20세기 최고의 연설가로 꼽히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실제로는 영국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영국 엑시터 대학의 리처드 토이에 교수는 ‘사자의 포효 - 제2차 세계대전 처칠의 연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자의 포효’는 상대를 향해 달려들 것처럼 노기로 가득 찬 모습을 담고 있는 처칠에 대한 사진 제목이다. 이 사진은 독일 나치와 싸우는 영국 지도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처칠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수많은 명연설을 남겨 조국의 운명 앞에서 절망했던 영국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이 독일에게 참패한 1940년 6월 남긴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란 연설과 1940년 5월 “인류의 전쟁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빚을, 이렇게 적은 사람에게 진 적은 없었다”는 연설은 세기를 뛰어넘는 명연설로 기억되고 있다.
또 “용맹과 헌신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영국 공군에게 영국의 모든 가정과 전세계의 감사를 바친다”,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 밖에 없다”,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연설 역시 처칠을 상징하는 명문구다.
그러나 토이에 교수는 이 같은 세간의 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정부 문서와 각종 설문조사, 일반 국민의 메모장 등을 분석한 결과 처칠의 연설이 당시 실의에 빠진 영국 국민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942년 영국이 일본에 싱가포르를 빼앗겼을 때 한 영국 시민이 “빌어먹을…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처칠이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 메모도 제시했다.
토이에 교수는 “암울했던 1940년대에 처칠의 연설은 결코 찬사를 받지 못했다”며 “많은 사람들은 그가 술에 취해 연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람들이 처칠의 연설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며 “사람들은 처칠의 연설 가운데 일부분만 좋아하고, 나머지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토이에 교수는 “나 역시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놀랐다”며 “처칠의 연설이 나빴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때로는 처칠의 연설이 너무 진지한(sobering) 메시지를 담고 있어 사람들이 낙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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