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과거와의 전쟁/장제국 동서대 총장

[열린세상] 과거와의 전쟁/장제국 동서대 총장

입력 2011-03-10 00:00
수정 2011-03-1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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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장제국 동서대 총장
요즈음 우리 사회는 온통 불만과 갈등투성이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 벌써 몇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를 멈출 묘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그나마 아무렇게나 처리하는 바람에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와 봄이 되면 먹는 물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소리에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또한, 매일같이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전세난에 대해 정부는 손도 못쓰고 있고,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무상급식 문제 등 복지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하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이후 남북관계는 극도의 긴장상태에 빠져 있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뻔뻔한 북의 위협이 되레 남한 내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날로 어려워지는 북한의 경제사정과 권력승계 문제로 체제불안의 소문이 난무하지만 그러한 유사사태에 대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아무런 정책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산적한 현안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오직 ‘권력 게임’에만 함몰되어 사사건건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종교계마저 정치 현안에 깊숙이 간여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 제11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는 대한민국이 왜 그에 걸맞은 격조 있는 사회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우리 사회가 지금 극심한 과거와 현재 간의 충돌을 겪고 있는 데서 찾고 싶다. 먼저 개발제일주의 시대에 유효했던 ‘큰정부’라는 과거적 습성이 이미 극도로 다양해진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경제는 그간 국가가 마련한 탄탄한 산업정책을 발판으로 밀어붙이기 식의 고도성장을 꾀해 성공한 케이스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복잡하게 된 사회에서 모든 것을 정부가 주도하기에는 이제 역부족인 것이다.

두번째는 개발시대를 거치며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적 희생에 대한 보상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자동차 산업만 놓고 보더라도 국산차 육성을 위해 수입 문을 꽁꽁 닫아준 정부 정책을 든든한 ‘백’으로 삼아 대기업은 자동차 개발에 매진했고, 이에 필요한 고비용을 국민들에게 전가시켜 왔다.

국민들은 오직 애국심 하나로 질도 좋지 않았던 국산차를 비싸게 사는 ‘희생’을 감수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가가 잘살게 되었다고 하니 이러한 과거의 ‘희생’에 대한 보상심리가 사회에 팽배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복지’라는 말이 지금 우리 사회의 큰 화두가 되고 있는 데는 바로 이러한 연유가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그간 무엇이든지 비교적 잘해 왔던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우리 과거의 유산이다. 무엇이 생각대로 잘되지 않으면 무조건 정부를 탓하고 나서는 것이 바로 청산되어야 할 또 하나의 과거로부터 물려진 습관인 것이다.

네번째는 정치권의 혼란인데 이도 과거와 현재가 충돌 중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이다 보니 완전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투쟁의 습관이 정치권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의 망령이 청산되지 않는 한 정치권은 계속 한국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문제도 과거 남북관계의 눈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대립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싫든 좋든 북한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런 현재 상황을 무시하면 남남갈등만 일으킬 뿐이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좀 더 국제적인 관점에서 거시적 대북정책을 만들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정부지상주의와 정치 과잉, 그리고 북한을 둘러싼 좌우대립이라는 빛바랜 ‘과거’를 청산하고, 과거의 ‘희생’에 대해 ‘적절한’ 복지로 보상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몸집에 더 이상 맞지 않는 ‘과거의 옷’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는 ‘현재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될 것이다.
2011-03-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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