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선을 명분 삼아 기업을 압박하다 주가가 오르면 단기 시세차익을 챙겨 떠나는 해외 투기성 자본의 ‘먹튀’ 행태는 이후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SK), 2004년 헤르메스인베스트먼트(삼성물산), 2006년 칼 아이칸연합(KT&G), 2015년과 2018년 엘리엇매니지먼트(삼성그룹, 현대차)의 사례가 반복되면서 ‘행동주의 펀드=기업사냥꾼’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지게 됐다.
외국계와 달리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출발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2006년 등장한 라자드자산운용의 한국지배구조개선펀드(장하성펀드)는 주주 권익 보호와 투명한 기업문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의 신호탄으로 관심을 모았다. 2018년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뒤 한진그룹 지배구조와 재무구조 개선을 촉구했던 KCGI, 일명 강성부펀드는 오너 일가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등에 업고 이름을 날렸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촉발한 케이팝 거목 SM엔터테인먼트의 지배구조 변화가 화제다. 얼라인은 지난해부터 SM이 창업주이자 최대 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이 설립한 연예기획사 ‘라이크기획’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면서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요구해 왔다. 얼라인은 7대 금융지주에도 ‘주주환원 정책이 부족하다’며 배당성향을 확대하라고 공개 요구한 상태다.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명분은 기업 가치 훼손이다. 경영진의 잘못으로 주주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 단기 실적주의에 빠질 수 있고, 시설 투자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성장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본격적인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2023-02-14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