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리즈 체니/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리즈 체니/김상연 논설위원

김상연 기자
김상연 기자
입력 2021-02-08 20:18
수정 2021-02-09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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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80)는 역대 미국 국방장관 중 가장 강한 인상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비대칭적으로 한쪽이 올라간 입꼬리와 단어를 씹어 먹듯 구강 구조를 크게 활용하는 발음, 사색에 잠긴 듯 아래쪽을 향하다가 문득 정면을 바라보는 눈초리,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지 않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 1990년 걸프전쟁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거의 매일 언론 앞에서 전황을 브리핑하던 체니는 철학 교수 같은 풍모를 풍겼지만, 그래서 더 강해 보였다.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으로서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체니는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밑에서는 부통령으로서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처럼 전쟁과 인연이 깊은 체니한테는 딸만 둘이 있는데, 이들도 아버지만큼이나 강성이다. 두 딸은 2013년 뜻밖의 이슈로 매스컴을 탄 바 있다. 상원의원 선거를 위해 뛰던 큰딸 리즈 체니(55)가 동성(同性) 결혼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자 이미 동성과 결혼한 둘째딸 메리 체니(52)가 발끈해 언니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후 8년 만에 리즈가 다시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연방하원의원으로서 서슬퍼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에 맞서 반(反)트럼프 행보에 앞장선 것이다. 공화당 내 서열 3위인 리즈는 지난달 13일 트럼프에 대한 하원 탄핵소추안 표결 때 당내 다수의 기류에 반해 찬성표를 던진 데 이어 지난 7일(현지시간)에는 트럼프에 대한 의회 폭동 선동 혐의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리즈는 공화당 내에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지만 “헌법을 지키겠다는 맹세는 당적이나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거물 공화당 의원들도 강성 트럼프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할 때 하원 입성 4년 차인 리즈가 거침없이 소신을 실천하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힘든 일이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정치생명 이상의 물리적 생명을 내놓아야 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펌에 다니는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 5명을 둔 리즈가 카메라 앞에 당당하게 서서 말할 때는 아버지에게서는 보이지 않던 무인(武人)의 풍모마저 느껴진다.

오는 4월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의 인물들이 ‘단골 후보군’이라며 새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 한국 정치문화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단골 후보군은 잘했든 못했든 뭔가 자신의 운명을 걸었거나 스스로 뭔가를 일궈 낸 사람들이다. 좀처럼 뜨지 않아 고민인 정치인들이라면 환경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그동안 과연 무엇을 걸었는지를 리즈 체니를 보며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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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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