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디올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2016년 9월 자신의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티셔츠에 적힌 문구다. 나이지리아 출신 여성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 제목에서 따왔다. 반응은 뜨거웠다. 내털리 포트먼, 김혜수 같은 국내외 여성 톱스타들이 공식 석상에서 이 티셔츠를 입으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덩달아 ‘슬로건 패션’도 재부각됐다. 옷이나 가방 등에 자신의 가치관, 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슬로건 패션은 1960~70년대 히피문화의 하나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슬로건 패션은 효율적인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가령 지난 미국 대선 때 유명 디자이너 마크 제이컵스는 힐러리 클린턴을 후원하는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했으며,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대통령선거 결과가 나온 뒤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길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영국에선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배우 콜린 퍼스가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티셔츠를 입고 인증샷을 찍었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슬로건 패션이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멕시코 접경 지역에 있는 이민자 아동 수용시설을 방문했을 때 입은 카키색 재킷의 등 부분에 적힌 “I REALLY DON’T CARE, DO U?”(나는 정말로 상관 안해, 너는?)가 비판의 대상이 됐다. 마치 격리 아동 문제에 상관을 안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재킷 게이트’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멜라니아의 의상 선택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남편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상관 안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대체 왜 그런 문구가 적힌 옷을 입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멜라니아가 톱모델 출신이어서 누구보다 패션의 영향력을 잘 안다는 점에서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그것은 그저 재킷일 뿐이고, 숨겨진 메시지는 없다”는 대변인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패션계에 몸담았던 멜라니아의 옷 고르는 센스에 실망스러워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만일 속내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패한 슬로건 패션이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다. 슬로건 패션의 본질은 개인의 주관과 메시지를 함축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2018-06-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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