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임창용 기자
입력 2016-10-12 22:12
수정 2016-10-1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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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 대 어웨어 사건’은 미국에서 ‘블랙리스트’의 가공할 위력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다. 1950년대 냉전체제 시작과 함께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고, 그 바람은 문화계에서도 매서웠다. 당시 조 매카시 상원의원을 추종하는 사설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겼는데 ‘어웨어’도 그중 하나였다. 무명 작가 빈센트 하트넷 등이 만든 이 단체는 특정인을 공산주의 동조자로 암시하는 간행물을 내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리스트는 문화계 채용과 해고의 기준이 됐다. 업계에선 아예 하트넷에게 자문료를 내고 채용 예정자의 사상 검증을 의뢰할 정도였다. 이때 반기를 들고 나선 인물이 CBS 라디오 인기 진행자였던 존 헨리 폴크다. 하지만 그 또한 블랙리스트에 올라 CBS에서 쫓겨난다. 긴 소송 끝에 승리하지만 이미 청취자들로부터 잊혀 재기에는 실패한다.

블랙리스트의 특징은 인물 정보가 암암리에 수집되고 쓰임새는 더 비밀스러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검증되지 않는 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는 자신이 왜 당하는지조차 모르기 쉽다. 폴크 대 어웨어 사건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이유도 모른 채 해고되거나 채용을 거부당했다. 고용주는 업무상 사소한 실수를 내세웠지만, 실제 이유는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리스트에 들어간 이유 또한 황당했다. 공산주의 옹호 발언을 한 사람과 친하다든가, 그가 주관하는 행사를 후원했다든가 하는 식의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청와대가 지난해 9000명이 넘는 문화예술계 인사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보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고 있다. 명단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관련 시국선언 등에 참여했거나, 지난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문재인·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 참여 인사 등을 담고 있다. 그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5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블랙리스트 존재 가능성을 제기했다. 회의록엔 권영빈 당시 예술위원장이 기금 지원과 관련해 ‘지원해 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라는 등 블랙리스트를 암시하는 듯한 언급이 나와 있다. 11월 회의록에선 심사위원 추천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얘기로 해서 심사에 빠졌다’는 한 참석자의 발언도 나온다.

블랙리스트는 지난해부터 문화예술계의 논란거리였다. 담당 공무원들이 각종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서 매 심사 단계마다 지나치게 시간을 끌고, 간섭하는 게 블랙리스트 때문 아니냐는 의심이 불거졌다. 문화예술인들을 정치·이념적 잣대로 차별한다면 이는 문화예술 발전에 독이 될 뿐이다. 과거 1970,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검열과 탄압 아래 문화예술인들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문화예술 발전도 멈췄다. 의심스러운 명단이 나온 만큼 그 실체가 반드시 규명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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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2016-10-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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