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미필적 고의, 여성혐오증/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필적 고의, 여성혐오증/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6-05-20 17:52
수정 2016-05-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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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극장에 갈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이 화장실이다. 여자 화장실을 복도의 맨 끝에 배치한 까닭이 궁금해서다. 남자 화장실 앞을 거쳐 굳이 외진 자리에 앉힌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까. 건물 설계자는 남성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여성 공간을 최대한 구석진 곳에 마련해 행인들의 시선에서 비켜나게 해 주려는 배려였을까.

설계자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배려였더라도 결론은 ‘난감’이다. 인적 드문 심야시간대라면 복도 끝의 여자 화장실은 공포의 공간이다. 남자 화장실과 나란히 붙어 있기까지 하다면 공포지수는 수직 상승, 최악이다. 미심쩍은 동선이 한눈에 파악되도록 남녀 화장실은 뚝 떼어 놓는 것이 상책이다. 그럴 수 없다면 한 뼘이라도 덜 구석진 곳에 여자 화장실을 두는 것이 차선이다. 이건 ‘건축학 이론’이 아니다. 일상에서 피부로 절감하는 ‘생활의 발견’이다.

서울 강남의 공중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묻지마 범행에 희생됐다. 여성혐오 범죄인지 우발 범행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운 좋아 살아남았다”며 여성들은 자조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성별을 싸잡아 서로 비하하는 입씨름 판이 볼썽사납다. ‘한남충’(한국 남성 벌레)이라는 여성 네티즌들의 공격에 남성들은 “추모 현장에 모인 여성들을 테러하겠다”고 협박한다.

여성혐오증이 심각한 사회병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빅데이터 자료만 봐도 나쁜 예후가 충분히 감지됐다는 지적이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지난해 빅데이터 분석 결과 여성 관련 연관어 1위가 폭력·범죄·살인이었다는 분석 자료를 내놨다. ‘여혐’(여성혐오) 언급량은 3년 전보다 무려 21.5배나 급증했다는 것이다. 경찰청의 범죄 보고서도 맥락이 같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묻지마 범죄 가운데 여성 피해 사건은 60%나 됐다.

여성혐오증이 우리나라만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여성을 공격하는 범행에 자주 비상이 걸린다. 재작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은 여성혐오자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모든 여성이 차별을 겪는다’는 항의의 온라인 태그(Yes All Women) 운동이 뜨거웠다. 인류 문화사를 통틀어서도 염녀(厭女)주의는 뿌리 깊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은 판도라를 지상 최초의 여자로 내려보내면서 굳이 ‘인간에게 즐거운 악(惡)’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으니.

이번 사건에 놀란 서울시가 남녀 공용화장실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2014년 공중화장실 범죄는 1800여건으로 살인, 성범죄 등 강력 범죄가 74%였다. 여성이 속수무책의 피해자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서울시만 놀랄 일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같이 고민할 문제다. 미필적 고의가 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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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05-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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