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가습기 살균제 파문/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가습기 살균제 파문/강동형 논설위원

강동형 기자
입력 2016-04-19 22:40
수정 2016-04-1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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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파문은 소비자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는 ‘빗나간 상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습기는 반드시 필요한 제품은 아니다. 공기가 건조하면 수건을 물에 적셔 널어 놓거나 수생식물을 띄운 물그릇 등을 놓아 두어도 습도를 높이는 데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사용하기 간편한 가습기 한 대쯤 없는 가정이 없다. 가습기 물을 소독하려고 살균제를 타는 가정도 있었는데 가습기 살균제를 쓰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한다.

1994년 겨울 모 경제신문에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가습기 살균제가 개발됐다’는 글이 처음 보도됐다. 그 후 2011년 5월 ‘미확인 바이러스 폐질환으로 산모들이 사망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원인 미상 폐 손상이 47.3배나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후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접수된 피해자는 1281명, 사망자는 225명이나 된다. 확인된 피해자만 403명, 사망자는 103명에 이른다. 2008년에는 대한소아학회 학술지에는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급성간질성 폐렴’이라는 사례 보고가 실렸다. 서울의 2개 대학병원에서 15명이 발병해 7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원인도 모른 채 치명적인 피해를 보았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검찰 수사가 끝나 봐야 알겠지만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유해화학물질 피해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판매·제조회사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히려 사실 은폐를 시도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사회문제화되자 2012년 초 살균제 제조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는 서울대 C교수 연구팀에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미치는 유해 여부 대한 실험을 의뢰한다. 이 연구팀은 의뢰인의 입맛에 맞춰 ‘가습기 살균제를 폐 손상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60차례에 걸친 실험에서 2차례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얻었으나 평균값을 내 위험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30명 중 1명이 높은 독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도 평균값으로 물타기를 한 셈이다. 장기간 소량 노출된 사람보다는 하루에 11시간 이상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노출된 사람 중에 피해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은폐 의혹이 짙다고 할 것이다.

원인 규명과 피해 보상은 이제 시작 단계다. 그동안 검찰의 수사 의지도 부족했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만큼 원인부터 확실히 밝혀야 한다.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제품을 판매한 회사와 원료를 제조 공급한 회사를 엄중히 처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보건 당국은 비슷한 용도인 에어컨 청결제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2016-04-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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