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통령의 유언/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유언/강동형 논설위원

강동형 기자
입력 2015-11-23 22:56
수정 2015-11-2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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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통합과 화합이다. 고인이 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아버지가) 평소에 안 쓰시던 ‘통합’과 ‘화합’을 써 무슨 의미냐고 묻자 ‘우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의사 표현이 힘들었기 때문에 ‘통합과 화합’은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마지막 글이자 유언이 된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의 유언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달라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물론 역대 대통령의 유언에서도 시대 상황과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함축하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은 동지이면서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와 상당히 닮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유지는 화해와 용서, 평화였다.

2009년 8월 23일 이희호 여사는 국장 중 서울광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화해와 용서, 평화,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밝혔다. 두 대통령의 유언이 닮았다는 것은 화해와 용서가 있어야 통합과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DJ가 방법론을 이야기했다면 YS는 도달해야 할 목표를 이야기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3개월 앞서 급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는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로 시작해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라고 맺고 있다. 양 김과 김종필 전 총리의 3김 시대를 역사 속에 묻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기를 갈망했던 ‘노 전 대통령다운 유서’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유서’로 많은 사람이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과 1990년 서거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기억할 만한 유지를 남기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9년 급작스런 서거로 유언을 남기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휘호를 유지로 받들고 있다.

1965년 서거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언은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이 전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이 말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야. 반드시 자유를 지켜야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경험한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유언이라 할 수 있겠다.

대통령의 유지는 한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남긴 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2015-11-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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