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천경자 문화훈장 논란/서동철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천경자 문화훈장 논란/서동철 수석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입력 2015-10-30 23:08
수정 2015-10-3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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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국가훈장 레지옹 도뇌르는 훌륭하게 자기 인생을 경영한 사람의 증표쯤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 훈장은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준다. 외국인이라면 프랑스 사람보다 훈장을 받은 것을 훨씬 더 큰 영예로 여길 수도 있다.

이 훈장을 받은 한국인은 생각보다 많다. 가야금병창의 인간문화재인 안숙선 명창이 1998년, 영화 ‘초록 물고기’와 ‘오아시스’, ‘밀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이 2004년 4등급에 해당하는 ‘오피시에’를 각각 받았다. 이 감독이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것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직후이니 문화 부처 수장 경력도 수훈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가장 낮은 5등급 ‘슈발리에’ 수훈자는 낯익은 사람들이 많다. 파리 바스티유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지휘자 정명훈과 동양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 단색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 이우환, 영화감독 임권택의 이름이 보인다.

두 번째 등급인 ‘그랑도피시’는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이 받았을 뿐이다. 세 번째 등급인 코망되르의 수훈자도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 모두 기업인이다. 훈격(勳格)을 정하는 데 문화보다 정치·경제 논리를 우위에 놓은 꼴이지만,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문화훈장은 영역을 국한하지 않는 레지옹 도뇌르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그럴수록 문화훈장의 격을 놓고 종종 벌어지는 논쟁은 더욱 문화적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8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천경자 화백의 경우가 그렇다.

정부는 엊그제 천 화백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줄 것인지를 논의했지만 추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미술계는 물론 평소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도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룬 천 화백의 개성 있는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1998년에는 90점 남짓한 자신의 작품을 서울시에 기증하고 저작권을 위탁하는 모범을 보인 그다.

천 화백이 198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이후 예술적 성취나 업적에 논란이 있었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논리도 억지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업적은 한 시기가 아니라 평생을 뭉뚱그려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문체부는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부의 결정이 세상의 일반적인 판단과 다르다면 설득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술적이지 않은 이유로 예술가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남아날 예술가는 많지 않다. 정부는 금관문화훈장 서훈 여부를 천 화백이 벌였던 세상과의 말싸움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성취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천 화백 자녀들도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천 화백이라면 금관문화훈장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했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세상이 인정한 천 화백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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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5-10-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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