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자판기 효과/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자판기 효과/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4-07-31 00:00
수정 2014-07-3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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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호흡기 질병인 사스(SARS)가 유행했던 2003년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스의 공포가 엄습하자 마을엔 “누구는 무슨 약을 먹었다”는 등의 뜬소문과 함께 민간요법들이 돌아다녔다. 사스를 내쫓으려고 집집마다 붉은색 종이를 대문에 붙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했다. 하지만 사망자는 늘어났다. 사스가 사그라진 이후 의학을 믿지 않고 부적에 의지한 행동을 후회한 것은 당연했다.

지난달 사망이 확인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을 놓고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유병언 괴담’이다. 처음에는 시신의 흔적과 사망 시점을 둔 진실 공방이 일더니, 지금은 시신의 키와 지문 채취 방법 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사도 못 믿겠다고 한다. 국과수가 사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의구심을 낳는 건 당연하다. 의심스러운 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애초부터 수사가 부실했다. 어제는 야당 대변인이 가세해 “외관상 유씨의 시신이 아니다”며 불을 지폈다. 국과수에서 잰 시신의 키(150㎝)가 본래보다 작다는 것이다. 시신 감식에 참여한 경찰관의 녹취록도 갖고 있다고 했다. 국과수가 “당시 시신은 목뼈 7개 중 3개가 빠져 그렇게 나온 것”이라고 해명하며 애를 먹고 있다. 유씨 사인 괴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중이다.

괴담은 대형 사건사고가 날 때면 어김없이 나온다. 소고기 촛불시위 때는 소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면 광우병에 걸리고, 소고기 라면 수프만 먹어도 뇌가 뚫린다는 황당한 말도 나돌았다. 정부의 자작극이라 주장했던 천안함 침몰 괴담도 비슷한 유형이다. 괴담이 나오는 원인은 여럿 있다. 첫째가 소통이 안 되는 사회에서 싹튼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신 때문이다. 사안마다 ‘거짓쇼’라 하고 ‘무책임한 선동’이라며 달리 목청을 높인다. 인터넷 시대인 요즘엔 참과 거짓을 판별할 틈을 주지 않고 삽시간에 도배되고, 빠르게 다른 곳으로 옮아간다.

‘자판기 효과’라는 말이 있다. 두어 명이 복도의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나눈 말이 진실인 것처럼 퍼지는 것을 뜻한다. 확인하지 않고 한 말이 ‘카더라’로 건너뛰면서 사실인 것처럼 자리하게 된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들은 제품을 만든 뒤 멀리 떨어져서 음을 듣는다. 옆에서 들어 좋은 소리는 최상급이 아니란다. 성악도 이와 비슷해 신인 성악가를 뽑는 오디션에서는 넓은 홀의 맨 끝 좌석에 심사인이 앉아 듣는다고 한다. 떨어져서 들어야 목소리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는 이치다. 좀 더 떨어져 듣고 멀리서 바라보는 여유가 아쉬운 시절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07-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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