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폭우/손성진 논설고문

[길섶에서] 폭우/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입력 2020-08-06 17:34
수정 2020-08-07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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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섬한 광란(光亂)에 풀 죽은 영혼이 버쩍 고개를 치켜든다. 물에 빠진 듯 허덕거리는, 썩은 정신을 일깨워 주려는 뜻도 알지 못하고, “하늘이 노했나 보다”라고 중얼거리는 사이 또 한 번 멀리서부터 굉음이 뒤통수를 내리친다.

이런 폭우가 얼마 만이던가. 물난리를 겪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퍼붓는 물줄기가 도리어 반가워 미친듯이 빗속을 첨벙첨벙 걸었다. 세속에 얼룩진 마음을 씻어 보려는 산중거사들처럼 무작정 걸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

노도처럼 흘러가는 황토물을 보는 것도 십수년 만이다. 그냥 멍하게 바라본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는 세상의 추물을 다 씻어 데려간다.

그리고 바다. 바다는 떠내려온 흙탕 강물로 벌겋게 자신을 물들였다. 모든 것은 바다로 흘러든다. 바다는 그 너른 품을 벌려 온갖 잡것들을 다 받아 준다. 내가 버린 내 얼룩도 받아 주었을까.

눈은 단지 덮어 줄 뿐이지만 비는 세상을 정화시킨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비는 그친다. 정화의 시간도 그렇게 끝났나 보다. 마음을 씻어 준 비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미움도, 까닭 없는 증오도 폭우에 다 떠내려갔기를 바랐다.

서쪽 황혼이 붉게 타올랐다. 저 노을을 잡아야지. 허황된 꿈이 다시 날 휘젓는다.



sonsj@seoul.co.kr
2020-08-0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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