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나목(裸木)/오일만 논설위원

[길섶에서] 나목(裸木)/오일만 논설위원

오일만 기자
오일만 기자
입력 2015-12-20 22:54
수정 2015-12-2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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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 오른다. 게으름을 떨치고 등산복을 주섬주섬 차려 입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고민 고민 나선 산행, 후회할 새도 없이 시린 바람이 뺨을 때린다. 등산로 초입, 무성한 잎새를 떨군 나무들이 휑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힘겹게 매달린 잎사귀들마저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해 허공을 난다.

정상을 향한 발걸음은 무겁지만 여기저기 나목(木)들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그동안 무수하게 눈을 마주쳤을 법도 한데 가만 들여다보면 생김새는 저마다 다르다. 무성한 여름 잔치를 끝낸 나무들이 낙엽을 떨군 뒤 비로소 자신들의 속살을 보여 주는 느낌이다. 삭풍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나목에서는 허상을 벗어던진 채 고통스런 진실과 대면하려는 구도자의 비장미(悲壯美)가 엿보인다.

바쁜 일상생활, 복잡한 사람들 속에 치여 지쳐 가는 연말이다. 이런 자리, 저런 자리에 휩쓸리면서 마음에 없는 무수한 말들을 꺼내 놓지만 정작 돌아서면 허허롭다.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소리는 출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이다. 이럴 때면 겨울 산 나목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꽁꽁 묶어 둔 내밀한 대화라도 나눠 보는 것이 어떨까.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2015-12-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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