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회사를 나와 몇 걸음 걷다 자선냄비와 마주쳤다. 아, 연말이 왔긴 왔구나 하고 지나치는데 왠지 뒤통수가 땅겼다. 뒤돌아 보니 자선냄비는 지난해 그 자리에 부끄러워하며, 쓸쓸하게 서 있었다.
자선냄비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연말이면 보이는 상대였다. 자선냄비의 배를 매년 채워준 것도 아니었다. “네 배 채워준다고 이 사회 배고프고 추운 사람들이 도움 받기는 하는 거야?” 의심하던 시절도 있었다. 제비가 봄소식을 전해주는 것처럼 자선냄비는 연말이 왔음을 알려줬고, 때로는 잊고 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그제 마주친 자선냄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래도 저 여기 서 있어요.” 하는 듯했다. 크고 작은 성의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던 기관이 온갖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진 지 오래지 않다. 자선냄비는 창피했으리라. 먹이를 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올 겨울에도 이 자리를 꿋꿋이 지켜줘. 우리는 여전히 너를 믿고 사랑해”.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자선냄비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연말이면 보이는 상대였다. 자선냄비의 배를 매년 채워준 것도 아니었다. “네 배 채워준다고 이 사회 배고프고 추운 사람들이 도움 받기는 하는 거야?” 의심하던 시절도 있었다. 제비가 봄소식을 전해주는 것처럼 자선냄비는 연말이 왔음을 알려줬고, 때로는 잊고 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그제 마주친 자선냄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래도 저 여기 서 있어요.” 하는 듯했다. 크고 작은 성의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던 기관이 온갖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진 지 오래지 않다. 자선냄비는 창피했으리라. 먹이를 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올 겨울에도 이 자리를 꿋꿋이 지켜줘. 우리는 여전히 너를 믿고 사랑해”.
이용원 특임논설위원 ywyi@seoul.co.kr
2010-12-03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