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나/김헌주 산업부 기자

[오늘의 눈]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나/김헌주 산업부 기자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6-11-15 22:56
수정 2016-11-1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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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주 산업부 기자
김헌주 산업부 기자
“대다수 회사는 위대해지지 않는다. 대부분 회사가 제법 좋아서다.”

세계적인 경영 전문가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좋은 기업의 ‘덫’을 주장했다. 좋은 기업에 만족하다 보면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은 거대하고 위대한 것의 ‘적’이라고 했다.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주요 기업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총수들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을 보면서 위대한 기업이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갤럭시 신화를 이룬 삼성전자는 분명 좋은 기업이다. 필요하면 돈을 쓸 줄도 안다. 지난 13일 삼성전자가 미국 자동차 전장(電裝·전자장비) 업체 하만을 인수한다고 깜짝 발표했을 때 경쟁사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제2의 삼성전자’를 꿈꾸는 중국 화웨이는 얼마 전 하만의 대표 오디오 브랜드인 하만카돈과 제휴한 태블릿 제품(미디어패드 M3)을 내놓기도 했다. 남보다 한발 빠른 전략으로 단숨에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한 삼성전자의 ‘힘’이 엿보인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처한 현실은 위대한 기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삼성전자가 최순실씨 개인 회사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직접 송금한 사실 등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정경유착의 정황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우리는 삼성처럼 뒷돈을 주지 않았다”라며 삼성과 선 긋기에 나설 정도다. “미래 사회에 대한 영감을 주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겠다”(비전 2020)는 글로벌 삼성전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구습을 버리지 못한 삼성전자를 보고 있으면 “이러려고 아이폰에서 갤럭시S7으로 갈아탔나”라는 자괴감까지 든다.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윤정석 특검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인다는 뜻)라는 고사성어로 삼성 임직원들의 소극적인 진술 태도를 문제 삼은 적이 있다. 차명계좌의 증거를 확보했는데도 삼성 직원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계좌가 맞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다. 이번에도 삼성전자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좋은 기업의 위상마저 잃을 수 있다. 이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업에 모두 해당된다. 기업들이 ‘지록위마’의 본래 뜻처럼 계속 ‘사슴’(강압적 출연)을 가리켜 ‘말’(자발적 모금)이라고 주장한다면 무너진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짐 콜린스의 저서로 돌아가 보자. 그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표현에 빗대어 역경 속에서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변화를 이끌어내 성공을 하는 사람(기업)이 위대한 사람(기업)이라고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수용소에 8년간 포로로 갇힌 장교 짐 스톡데일이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풀려날 것을 굳게 믿고 살아남은 것처럼 위대한 기업의 첫 번째 발걸음은 현실 인식이다. 검찰 수사로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한다고 툴툴대기보다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재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dream@seoul.co.kr
2016-11-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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