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두 농민에게 바치는 ‘묵념’/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두 농민에게 바치는 ‘묵념’/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16-10-16 18:14
수정 2016-10-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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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정치부 기자
이현정 정치부 기자
10년이 흘렀습니다. 형님이 경찰에게 맞아 서울 여의도 아스팔트 바닥에 피 흘리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고서 계절이 마흔세 번 속절없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은 형님을 ‘전용철 농민’으로 불렀고 혹자는 ‘열사’라 칭했지만, 제게 형님은 그저 사람 좋고 술 좋아하고 허허 잘 웃던 큰오빠 같던 아재였습니다. 농활 온 대학생들이 형님 버섯농장 일을 돕겠다며 우르르 몰려가 되레 버섯 갓을 다 분질러도 “괜찮아”를 연발하셨지요. 미안해하는 학생들에게 저녁 반찬 하라며 봉지가 넘치도록 버섯을 담고 막걸리까지 챙겨 주셨어요.

형님을 다시 본 건 2005년 11월 여의도에서 열린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였습니다. “이게 몇 년 만이냐”며 부둥켜안고 나눈 덕담이 형님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형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로 퉁퉁 부은 사진 속 형님의 얼굴이 믿기지 않아 이름을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사진 속 그분이 형님이 아니길 빌고 또 빌며.

형님, 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형님처럼 농민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317일간의 투병 끝에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는데 백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놓고 진실공방이 한창입니다. 사망진단서를 쓴 서울대병원 뒤로 물대포를 쏜 공권력도, 총체적 책임이 있는 정부도 숨어버렸습니다. 경찰의 진압으로 시민이 사망했는데 책임진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건 발생 42일 만에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입니다. 비정상과 비상식이 꼬리를 무는 지금 과연 ‘상식’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합니다.

지난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다시 형님을 떠올렸습니다. “국감 시작 전 백남기 농민을 위해 묵념하자”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의 제안에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은 “사망한 의경도 많은데 왜 그런 분에 대한 묵념은 안 하고 이 분(백남기)한테만 하느냐”고 거부했습니다. “백 농민에 대한 묵념은 지역구 민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언성을 높이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묵념이 시작되자 김상훈 간사를 제외한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퇴장했습니다. 30초 묵념하자는데 15분간 항의가 이어졌고, 국감이 20분간 정회됐습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갖추는 묵념조차 이들에겐 ‘정쟁’의 대상이었습니다. 형님과 백 농민이 여당 의원이 떠난 빈자리에 황량한 표정으로 서 있는 듯하여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대신해서 올립니다. 유가족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쏟아내고 내 이웃, 내 가족, 혹은 내가 될 수 있었던 죽음 앞에 조의조차 바치지 못하는 대한민국에 묵념.

hjlee@seoul.co.kr
2016-10-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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