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사회부 기자
당시 최 명예교수의 이름을 공개한 까닭은 단순히 기사에 대한 기자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교육부가 명단 공개를 꺼린다는 기류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 확정고시 때 “집필부터 발행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하자 태도를 바꿔, 결국 대표 집필진 2명만 공개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먼저 최 명예교수의 이름을 공개해 ‘애써 감춰도 비밀은 결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보이고 싶은 기자로서의 오기가 작용했다.
최 명예교수의 이름이 나간 직후 관심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최 교수는 제자들의 만류에 따라 기자회견장에 나서질 못했다. 상황도 급변했다. 일부 여기자들에게 했던 부적절한 언행이 보도됐다. 그는 결국 대표 집필진을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예상외였던 것은 최 명예교수 사퇴 이후 교육부의 태도다. 최 명예교수의 사퇴를 이유로 “적절한 시점에 집필진을 공개하겠다”고 사실상 비공개 방침을 아예 공언해 버린 것이다.
언론의 관심이 과도하고 이에 따른 비난이 이어지면 집필에 방해된다는 이유였다. 대표 집필진이 알려지면 국정 교과서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최 명예교수의 사퇴가 또 다른 비밀주의의 명분이 돼버렸다.
냉정하게 따진다면 최 명예교수가 자진 사퇴한 것은 그의 부적절한 언행 때문이다. 언론이 이름을 공개하고 집요하게 따라붙어 사달이 난 것처럼 책임을 돌리는 일은 부적절하다. 나아가 ‘집필진이 공개되면 시민사회단체 등의 압박이 뒤따른다’는 교육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름을 공개했을 때 반대가 강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만큼 교육 당국은 더더욱 집필진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알 권리라는 용어는 미국 AP통신사의 이사인 켄트 쿠퍼가 1945년 한 강연에서 “시민은 완전하고 정확하게 제시되는 뉴스에 접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에서 나왔다. 그는 “국민의 알 권리가 없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 추진의 주체는 정부다. 하지만 그 권한과 책임은 국민에게서 받았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깃든 민주주의의 원리다. 명단 비공개는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정화의 주체는 정부이지만, 알 권리의 주체는 국민이다. 이런 이유에서 교육부가 밝힌 ‘적절한 시점’은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점이 돼야 한다.
gjkim@seoul.co.kr
2015-11-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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