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인문학이 부러운 과학/유용하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인문학이 부러운 과학/유용하 사회부 기자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5-06-09 17:56
수정 2015-06-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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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사회부 기자
유용하 사회부 기자
“난 요즘 인문학 쪽 분위기가 부럽다.”

얼마 전 대학교수, 중학교 교사, 무직자,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중 대학교수인 친구가 불쑥 꺼낸 말이다. 인문학 전공자나 대학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며 죽겠다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해서 모두 그 친구를 쳐다봤다.

그의 말인즉 “강단 인문학은 위기일지 모르지만, 기업이나 언론, 심지어 백화점 문화센터까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시장은 활황 아니냐”는 것이었다. 반면 대중에게 과학기술은 여전히 ‘내 삶과는 상관없는 어려운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으니 부럽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모두가 ‘배부른 이공계 교수님의 헛소리’라고 공격하는 바람에 그 친구는 본전도 못 찾고 술만 거푸 마셔 댔다.

사실 요즘 같은 인문학 열풍 속에서는 ‘열역학 제1법칙’은 모르더라도 동서양 고전 몇 권쯤은 읽은 티를 내야 트렌드를 따라가는 똑똑한 사람 대접을 받는다.

대형 서점에 가봐도 인문학 분야는 한 달이 멀다 하고 베스트셀러가 바뀌는데,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몇 년째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총, 균, 쇠’ 등이 요지부동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이 책들이 워낙 ‘불후의 명작’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과학책을 찾는 사람들이 적고 관심 밖에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영국의 과학자 겸 소설가인 찰스 퍼시 스노는 1959년 케임브리지대 리드 강좌에서 ‘두 문화’라는 제목의 유명한 강연을 했다. 현대문명을 떠받들고 있는 과학과 인문학의 의사 소통 단절이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했다. 세계라는 새는 좌우의 사상뿐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방법론이 균형을 이뤄야 떨어지지 않고 날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회는 물질주의와 배금주의로 인간 경시 현상이 넘쳐나게 된다.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가’라는 고민이 없는 곳에서는 사상의 과잉으로 사회의 분열이 초래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떻게’에 대한 고민도 없고, 과학의 합리적 사고까지 배제된 감정의 과잉 상태에 있는 듯하다. 사회 곳곳에 괴담이 넘쳐나고, 상대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어도 내 주장이 옳다고 우겨 대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과학 교육의 본질은 지식의 습득이 아닌 생각의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입시 중심의 주입식 교육 환경에서 합리성과 사고의 방식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나무 밑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학교에서 어렵다면 다양한 대중 강연 등으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그 속에서 합리적 사고방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다.

과학 동네와 인문 동네를 넘나드는 경계인으로서 친구의 깊은 고민을 이해하지 않고, 술기운에 못 이겨 ‘헛소리’라 비난한 것이 뒤늦게 마음에 걸린다.

edmondy@seoul.co.kr
2015-06-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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