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 섣부른 반려견 입마개 대책/박창길 성공회대 경영학부 대우교수

[In&Out] 섣부른 반려견 입마개 대책/박창길 성공회대 경영학부 대우교수

입력 2018-01-30 17:22
수정 2018-01-3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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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길 성공회대 경영학부 대우교수
박창길 성공회대 경영학부 대우교수
반려견이 보호자와 산책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도 기쁨을 준다. 개들은 나무 밑 수풀의 냄새를 맡으며 자기 영역을 표시한다. 반려견의 만족감이 충족되는 동안 보호자가 목줄을 잡고 옆에서 기다린다면 과연 개물림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드문 일을 해결하고자 전국의 체고 40㎝ 이상의 개에게 과연 입마개를 채워야 하는지 의문이다.

세계적으로 체고가 40㎝ 이상의 개들에게 입마개를 요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3개국이 기존의 맹견법을 폐기했다. 미국의 20개 주는 동물을 품종에 따라 차별하는 법을 아예 처음부터 금지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 뉴욕주는 ‘어떤 프로그램도 품종을 특정해 규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입마개 등은 위험가능성을 평가해 개별적으로 규제한다. 즉 품종이나 외양을 문제 삼아 일괄 규제하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제대로 된 현황 자료도 없이, 획일적인 규제 정책부터 앞세우는 것은 섣부르다. 미국이 2000년부터 10년 동안 256건의 직접적 사망을 가져온 개물림에 의한 사고를 분석한 대표적인 연구도 ‘품종에 대한 부적절한 강조로 인해 소유자의 책임성과 사육문제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광범위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을 공격하는 개는 폐쇄된 환경에서 지낸다. 사람과의 적극적인 관계가 없이 방치됐다가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 어린이나 노약자를 공격해 사고를 일으킨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칠 때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과의 접촉 없이 고립된 환경에 있는 개가 일으키는 사고가 개물림 사고 원인의 76.2%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원인에 대처하려면 입마개를 채우기에 앞서 개 주인이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행위를 규제해 동물복지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개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평생을 1m보다 짧은 줄에 매여 길러지는 일도 적지 않다.

영국에서 215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개가 사고를 예측하는 요소에 대한 의견조사에 의하면 동물보호자 외에도 사육업자들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미 개는 새끼에게 놀이를 통해 다양한 학습을 시킨다. 특히 초기 4~5주를 중심으로 어미 개와 접촉하는 사람과의 학습이 매우 결정적이라고 한다. 현재와 같은 악명 높은 좁은 철망으로 만들어진 ‘뜬장’ 공간에서 강아지들이 학습받을 수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등은 반려동물에게 충분한 운동공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 인간과 어울리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의 기준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2000년대 이후 언론 등이 열악한 번식공장을 문제 삼아 왔지만, 바뀌지 않았다. 입마개를 채우기에 앞서 동물복지를 먼저 보장해야 한다.
2018-01-3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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