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 개의 열쇠/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경사노위 공익위원

[기고] 세 개의 열쇠/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경사노위 공익위원

입력 2019-02-25 17:34
수정 2019-02-2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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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경사노위 공익위원
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경사노위 공익위원
“평화를 원하거든 정의를 일구라.”

국제노동기구(ILO)는 첫 건물의 공사를 시작할 때 주춧돌 세 개를 놓으며 두 번째 돌에 이런 모토를 새겼다. 노사정 삼자주의라는 기초 위에 노동의 정의를 일굼으로써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문에는 삼중 자물쇠가 설치됐다. 1926년 건물 개관식에서 당시 ILO 의장은 노사 대표에게 열쇠를 하나씩 건네며 “각 집단은 같은 문으로 들어와 같은 임무로 협력한다. 우리의 건물과 규정, 공동의 목적을 지킬 의무를 진다”고 말했다. ILO가 노사정의 일치된 합의를 통해서만 운영된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전 세계 노동법·노동기준을 개선하기 위한 ‘삼자주의의 문’을 연 것이다.

ILO는 187개 회원국에서 선출된 노사정이 보편적 국제노동 기준을 결정하고 모든 사람이 괜찮은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한국은 1991년 가입했고 1996년부터 지금껏 3년마다 선출되는 이사국 지위를 유지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용자단체 또한 선거로 선출되는 사용자 이사를 수차례 배출했다. ILO가 추구하는 목표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노사정이 공유하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이는 ILO 협약 비준으로 나타낸다. 지금껏 세계 노사정이 약속한 ILO 협약은 총 189개다. 이 중 8개 협약은 가장 핵심적인 기본 협약이다.

우리나라는 29개 협약을 비준했지만 핵심 기본 협약 중 4개만 비준했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단체교섭권,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4개 협약은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이 협약들은 약 7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187개 회원국 가운데 4개 기본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7개국 중 하나가 한국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에 어울리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해 7월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단결권에 관한 협약 2개를 비준하려는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공익위원 만장일치로 ILO 기본 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 의견도 채택했다.

전 세계 각국의 노사정이 70년 전에 만든 약속을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켜야 한다. 세 개의 열쇠가 있다. 자물쇠 달린 문 너머엔 세계화 시대의 노동으로 향하는 길이 놓여 있다. 세 개의 열쇠가 제 역할을 했을 때 우리는 그 길 위를 걸을 수 있을 것이다.
2019-02-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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