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연구그룹 그룹장
하지만 주택가 생활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중을 보면 이런 상황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2013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전체 도로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58%에 해당하는 2944명이 폭 9m 미만의 도로에서 목숨을 잃었다. 9m 미만의 도로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는 중앙선 구분이 없는 주택가 생활도로에서 보행자가 차에 치이는 사고가 많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주택가 생활도로의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량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과 일본의 많은 도시들이 주택가 생활도로에서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고 있다. 낮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곳에 과속방지턱 등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주차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특히 네덜란드는 도로 구간 단위로 시행하던 시속 30㎞ 속도제한 구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전체 주거지역 도로의 85%를 시속 30㎞ 속도제한 구역으로 만들었다. 이유는 명확하다. 시속 30㎞ 이하의 속도에서는 차와 사람이 충돌하더라도 사람의 생존 가능성이 95%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나라의 사고 통계 분석과 연구에서 증명된 바 있다.
우리나라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주택가 생활도로의 제한속도를 법률상 시속 30㎞로 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주택가 생활도로의 제한속도가 얼마인지 개념조차 없는 상태다. 좁은 길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시속 30㎞ 이상으로 달리는 건 매우 위험하다. 제한속도를 법으로 정하면 주택가 생활도로에서는 차보다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다. 모든 도로가 차를 위한 공간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새로운 주택가를 조성할 때는 이를 감안한 가로 설계가 이뤄질 수도 있다.
낮은 속도제한은 운전자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주택가 생활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한다고 해서 전체 운전 시간에 큰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어차피 주택가 도로에서는 길이 좁아 높은 속도를 내기도 어렵고, 전체 운행 거리에서 이들 도로 구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이미 시속 30㎞ 속도제한 구간은 어린이보호구역, 노인보호구역, 보행우선구역 등 여러 곳에 시행돼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좀 더 확대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비용이 드는 정책도 아니다. 오히려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사람 중심의 성숙한 교통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국가 교통안전 수준의 기준이 되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절반가량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젠 사람을 살리는 속도 시속 30㎞가 주택가 생활도로의 기본으로 인식돼야 한다.
2015-08-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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