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시인·전 아시아문화중심도시기획단장
문학의 입장에서 남아시아는 ‘라마야나 이야기 공동체’다. 힌두교 신화가 촘촘히 아로새겨진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는 비슈누신의 화신인 라마 왕자의 모험기다.
이 모험의 과정은 동남아 거의 모든 나라로 퍼져 나가 제각기 그 나라의 독특한 ‘라마야나’로 뿌리를 내린다. 인도네시아의 그림자 인형극 와양, 발리 힌두교 사원의 부조, 에메랄드사원의 아름다운 벽화, 그리고 앙코르와트의 장엄한 부조와 춤. 남아시아는 가히 라마야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공유한 거대한 ‘라마야나 문화공동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라마야나 공동체와 ‘사람’을 중심에 둔 진정한 교류를 원한다면 그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를 통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엔 베트남을 뺀 남아시아 9개국의 현대 장편소설이 모두 합해야 10편 남짓만 번역돼 있다. 미얀마나 캄보디아 장편소설은 아예 단 한 편도 소개돼 있지 않은 상황이니 교류라는 말을 입에 담기도 민망하다.
한나 아렌트는 스토리란 이해하기 어려운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스토리는 의미를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서 의미를 드러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서로를 모르면서 이루어지는 교류와 협력이란 앙코르와트를 사랑해 결국 사원에서 조각상을 파내고 훔쳐 도둑으로 전락한 앙드레 말로의 길을 가기 쉽다. 아렌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새로운 만남에서 전제돼야 할 것은 경제적 잉여 창출 이전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모럴이다. 이야기는 애초부터 경쟁적이고 영리적인 목적보다 비경쟁적이고 비영리적인 모럴을 담기 위해 씌어진다. 그래서 서사 속에 기억을 보전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미래를 위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만드는 것이 시인과 역사가의 ‘정치적’ 기능이다.
한류가 그렇듯 미얀마,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쌍방향의 길을 열어야 한다.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콘텐츠가 흐르는 물꼬가 터지길 기대해 본다.
2014-12-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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