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훈 변호사
그런데 여야가 50대50 동수인 상원에서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조 맨친의 반대에 번번이 막혔다. 그의 지역구 웨스트버지니아는 광산이 주된 산업이고 맨친 자신도 석탄업에 투자했다. 이를 두고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인류의 미래를 망친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7월 27일 맨친이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와 법안 통과에 전격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기후변화 및 에너지 관련 예산 3690억 달러를 투입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한다는 내용, 건강보험 지원에 필요한 예산 등이 포함됐다. 재원 조달을 위해 법인세 최저세율 15%를 적용하는 증세 방안도 들어갔다. 기후변화 대응과 증세에 소극적이던 맨친의 입장 변화를 민주당 동료 의원들조차 기분 좋은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물론 내준 것도 있다. 전체 규모가 2조 달러에서 절반 이하로 다시 줄었고, 석유 채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지원을 일부 유지하는 등 기후변화에 역행하는 부분도 있다. 앞으로 갈 길도 멀다. 맨친의 결정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다시 하원 의결까지 거쳐 최종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 법안이 기사회생한 과정은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리력이나 독재자의 지시가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 즉 대화와 타협에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다.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르니 줄 건 주고 받을 것은 받고, 서너 발짝을 한 번에 뛰기는 어려우니 아쉽지만 일단 모두가 반 걸음만 내딛어 보는 것이다. 사이다로 한 방에 뚫지는 못해도 할 수 있는 부분을 어떻게든 찾아서 꾸역꾸역 나아가는 가능성의 예술이 정치인 것이다.
이 법안의 성과는 물론 후일의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 인구 180만명의 작은 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 1명 때문에 법안이 좌우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고, 맨친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생각해 볼 점이 있는 사건이다. 법안 명칭에서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더 나은 재건’이 빠지고 ‘인플레이션 완화법’이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이 되더라도, 원래 제안했던 규모의 몇 분의 일로 금액이 줄더라도, 법안 자체가 무산되고 특정인을 기후변화 악당이라 비난하는 것보다는 일단 기후변화 대응 예산을 조금이라도 확보해서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더욱이 그 ‘조금’이 480조원 정도 된다면 말이다.
2022-08-0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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