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아무 근거 없는 마타도어. ㉡황당무계한 마타도어마저 나온다. ㉢무턱대고 마타도어를 하면 안 된다.
선거는 전쟁 같은 말들을 내뱉는다.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중상’,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이 쏟아진다. 뜨거워지면 이 둘을 합친 ‘중상모략’이 판을 친다. 익숙한 풍경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중상모략’에 “여야가 상호 비방과 중상모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예문이 실려 있을 정도다.
상대를 ‘중상모략’하는 게 ‘마타도어’다.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마타도르’에서 유래했다. 익숙한 우리말로는 ‘흑색선전’이 있다. ‘모략선전’이라고도 한다. 정치권 일부에선 이런 말들보다 ‘마타도어’를 더 그럴듯하다고 여긴다. 최근 들어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1960대에도, 70년대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썼다. 그렇지만 일상으로 들어오진 못했고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타도어’란 말이 나오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는 뉴스도 나온다.
소설 ‘1984’를 쓴 조지 오웰은 이런 글쓰기 원칙도 정했다.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외래어나 과학용어, 전문용어는 절대 쓰지 않는다.’ 글쓰기라 했지만, 정치의 말하기 원칙이라고 해도 무리 없겠다.
‘컷오프’도 반드시 써야 할 표현은 아니다. “탈락자는 물론 컷오프 순위와 표차”에서 ‘컷오프 순위’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정치는 말로 하는데, 말이 정치를 어렵게 한다. 참여를 외치면서 동시에 이렇게 막기도 한다. ‘예비경선 순위’라고 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예비경선 후보 8명 가운데 2명을 컷오프한다”에서 ‘컷오프한다’는 ‘탈락시킨다’가 더 좋다.
‘티핑 포인트’는 생소하고 더 어렵다. ‘갑자기 뒤집히는 점’이란 뜻이다. 작은 변화들이 쌓여 가고, 그러다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불러올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나 순간을 가리킨다.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티핑 포인트’가 시작된 듯싶다.” 다른 말로 바꿔 쓸 수 없을까. ‘급변점’, ‘전환점’ 같은 말들로 쓰는 이들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예비선거), 마스터플랜(종합계획, 기본계획, 기본설계), 로드맵(이행안, 단계별 이행안), 매니페스토(참공약), 규제 샌드박스(규제유예, 규제유예제도)….
굳이 외국어에 의미를 담으려는 정치가 있다. 그런다고 새롭지 않다. 쉽고, 편하고, 분명해야 신선하게 다가온다. 좋은 정치의 출발은 쉬운 말에 있다.
2021-07-12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