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에세이] 공무원은 ‘직업인’ 그 이상이다/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수요 에세이] 공무원은 ‘직업인’ 그 이상이다/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입력 2017-09-12 23:36
수정 2017-09-1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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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지난 번 서울시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86대1을 기록했다고 한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그럴듯한 직장을 버리는 젊은이들도 있다. 직업으로서 공무원의 인기가 그만큼 좋다는 얘기다. 어떤 결혼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예비 신부가 가장 선호하는 신랑감으로 공무원이 부동의 1위를 10년간이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기간에 총각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부감도 공무원이 1위였다. 공공기관을 포함한 공직은 편하고 안정적이어서 ‘신의 직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서 공무원의 가치관은 많이 달라졌다. 시대도 변했고, 정권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면서 상황도 어려워졌다. 공무원의 사명감과 적극성은 크게 위축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직업인이 되었다. 복지부동하는 철밥통이라고 비난받고, 정권이 바뀔 때는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모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토록 애를 쓰며 추진했던 정책이 하루아침에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말을 해야 하고, 그토록 앞장서 막아 왔던 정책을 이제는 좋은 정책이라고 말을 바꿔야 한다. 처지가 가련하기만 하다. 생계를 사수해야 하는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공무원들은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신념을 실현하는 사람들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개발연대의 공무원들은 나름대로 정신적 가치를 중시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선례가 없는 새로운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결기가 있었다. 그런 열정과 공직 문화가 국가발전의 큰 힘이 됐다.

먼저 공무원에게 호소하고 싶다. 공무원도 직업인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특수성이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은 국가의 살림꾼이다. 국가는 선거에 의해 정권이 수시로 바뀐다. 공무원이 소극적인 직업인에 머무른다면, 국가운영은 엄청난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선비의 지조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발전을 위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위기이다. 동북아의 국제정세와 북핵으로 인한 안보문제, 여러 사회적 갈등문제, 저성장으로 심각해지는 경제문제, 4차 산업혁명에 시급히 대응해야 하는데 수많은 규제에 묶여 허덕이고 있는 산업기술 현장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많다.

옛날의 공무원은 왕을 보좌하는 사적 조직이었다. 왕이 마음대로 임면했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점차 전문화되고 선발 절차가 제도화됐다. 이는 왕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구하고자 하는 필요성도 있었지만, 영주나 세력 있는 권력자들이 왕권을 제약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유럽은 500여년 전부터 분업적인 전문 관료층이 형성되었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우체국 직원에 이르기까지 수십만명이 교체되는 엽관제도를 운영하다가 제도혁신을 통해 직업공무원 제도를 이뤘다. 즉 현대 공무원 제도는 왕이나 정당이 자의로 권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견제하면서 발전됐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진정한 관료는 무엇보다 비당파적으로 행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중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또 공무원은 청렴에 관해 고도의 명예심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명예심이 없으면 ‘무서운 부패와 야비한 속물근성’에 위험이 넘쳐나고, 국가기구의 능률도 위협받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공무원법에서도 청렴 의무와 품위유지 의무 등을 통해 명예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입에 풀칠하려고 영혼을 버리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공무원의 명예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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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단순한 직업인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가발전에 공헌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첫째가 인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청와대의 인사비서관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거의 엽관주의화돼 가고 있는 이 제도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 시대를 거스르는 제도다. 다음으로 감사원의 정책감사 제도를 없애고, 공직에 직위분류제를 대폭 확산시키고, 평가제도를 합리화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의 향상을 위해 과감한 정부혁신을 기대한다.
2017-09-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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