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석의 서울살이] 쓰레기 분리수거 유감

[노주석의 서울살이] 쓰레기 분리수거 유감

입력 2018-04-13 17:56
수정 2018-04-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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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쓰레기 분리수거 담당 4년차다. 부부 동반 친구 모임에서 얘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너나없이 도우미로 뛰고 있었다. 연차도 오래됐고, 일반 쓰레기는 물론 음식물 쓰레기와 청소, 설거지까지 폐기물 관련 영역을 능란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가사 분담의 신풍속도라 할 만하다.

엄마 중심 가정 권력구조 앞에 아빠의 체면치레는 무력했다. 번듯할수록 모범생이었다. 한 기업체 임원은 야근이나 회식 중 “분리수거하러 간다”면서 자리를 뜨는 부하 직원의 흉을 봤다. 전업주부 여부와 무관하게 엄마와 아내는 폐기물 처리 영역에서 손을 뗀 듯하다. 쓰레기 재활용과 음식물 분리수거는 아빠와 남편 담당으로 자리 잡았다. 종량제봉투 버리기와 일반쓰레기 분리수거는 주례행사였지만, 앞으로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라는 일일행사의 혹이 하나 더 붙을 것 같다는 꺼림칙한 느낌이 음습했다.

분리수거 날 현장을 유심히 관찰해 본 결과 엄혹한 현실을 재확인했다. 아빠 도우미 일색이었다. 간혹 연세 지긋한 할머니나, 미혼 직장 여성이 드문드문했고, 감독관 역할의 엄마 도우미가 가뭄에 콩 나듯 눈에 띌 뿐이다. 이 땅에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된 1995년 이후 20여년 만에 쓰레기 뒤처리는 ‘남자 일거리’로 정착됐음을 선언해야겠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목요일 분리수거의 날 경비원으로부터 새로운 수거 요령 시범이 있었다. 4월부터 스티로폼, 더러운 비닐류와 음식물 포장용기는 분리수거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얘기였다. 그런 뉴스는 들어 본 적이 없기에 의아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도 수거 가능, 불가능 사례가 적시된 안내물이 나붙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4월에 접어들자 ‘쓰레기 대란’ 뉴스가 지면과 전파를 도배했고, 관계 당국의 무대책과 늑장 대응을 꾸짖었다. 정부도 지난해 7월부터 예고된 사태에 대비 못 한 잘못을 시인했다. 이 때문인지 첫 주 분리수거는 어물쩍 그냥 넘어갔다. 두 번째 주 분리수거일 제대로 해 보려고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지만 퇴짜를 맞았고, 다음부터는 철저히 해 달라는 신신당부도 들었다. 부적격 재활용품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면 폐기물관리법에 어긋나고, 걸리면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게 골치 아팠다. 덕지덕지 붙은 포장지 및 테이프 제거와 각종 용기와 비닐 세척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집 안 청소보다 일이 더 많다. 짜증이 났다.

네덜란드의 생태학자 로프 헹거벨트는 ‘훼손된 세상’에서 인간이 소비한 쓰레기의 재앙을 고발했다. 쓰레기가 40억년을 이어온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범이 됐다. 범위를 좁혀도 도시의 역사는 쓰레기에서 비롯된 각종 오염과의 전쟁사였다. 우리도 일찍이 청계천을 풍수명당의 자리에서 도시의 하수구로 끌어내리고 준천을 통해 하수구의 역할을 회복시킨 전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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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새 가사 분담을 떠안은 아빠와 남편들의 피로도 가중에 있다. 정책 당국자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단순 생활영역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안팎곱사등이에다 만만찮은 가사 부담까지 짊어진 대한민국 남자 가장들의 피로도가 겹겹이 쌓이고 있다. 임계점에 이르면 폭발하는 법이다. 청와대와 시장 관사에 살기 때문에 분리수거 현장에서 열외인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가장들의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알기나 할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쓰레기가 이머징 이슈가 될지도 모르겠다.
2018-04-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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