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지 않은 말/이바라기 노리코
마음속에 강한 압력을 가해
남몰래 감춰둔 말
소리 내 말하면
글로 써내면
순식간에 빛이 바래리라
그 말로 인해
나 여기 있으나
그 말로 인해
나 살아갈 힘을 얻으나
남에게 전하려 하면
너무도 평범해져
결코 전하지 못하리라
그 사람 고유의 기압 내에서만
생명을 얻는 말도 있는 법이다
한 자루의 초처럼
격렬히 타올라라 완전히 타버려라
제멋대로
어느 누구의 눈에도 닿지 않고
말을 많이 한 날은 영혼이 텅 빈 자루가 된 기분입니다. 진실에 다가가려 할수록 언어는 쉽게 모양을 바꾸니까요. 말을 보탤수록 원래 뜻과 멀어져 웅변이 되고, 얄팍해지고, 생기 없는 말이 되곤 합니다. 시인은 한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기압’ 내에서만 살아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발화를 거치지 않고 혀 아래 꼭꼭 다져 놓은 말. 불꽃처럼 격렬히 타올랐다가 자신의 내부에서 고요히 사그라드는 말. 그런 말은 침묵을 연료로 해야 뜨겁게 타오를 수 있다지요. 초 한 자루를 태우는 시간 동안 입을 다물고 싶습니다. 고체였던 초가, 액체 상태의 촛농이 되어 흐르고, 다시 기체로 몸을 바꾸는 과정을 떠올려 봅니다. 말이 생각이 되어 고요히 맺혔다가, 뜨겁게 내면을 바꾸는 힘을 믿고 싶어집니다.
신미나 시인
2022-09-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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