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밤꽃/나석중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밤꽃/나석중

입력 2022-03-10 20:38
수정 2022-03-1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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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나석중

초면에 말 붙여오는
당당한 사랑은 들키고 싶은 속성이 있는 것인지

겹겹으로 무장한 밤톨 같은 노인이 획 돌아보며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 나이 올해 96세라 하시네
나 당신 뒤를 걸어가다가 순간 황당했으나
이내 웃으며 어디 가시냐, 고 웃으며 물었더니
애인 만나러 간다며 밤꽃을 피웠네
애인은 연세가 얼마신지 또 물으니 90이라 하시며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눈 치켜뜨고 기세도 당당히 웃는 낯빛이 붉었네

일찍 사랑을 포기한 사내는 사내도 아니라고 난
느슨 허리띠 졸라맸네

동천에 아기 민들레꽃 피었군요. 새봄의 민들레꽃 보고 있으면 마음이 두둥실 떠갑니다. 시 속의 어르신들, 참 젊게 사시네요. 96세와 90세. 이승을 이만큼 견뎌내기 조련치 않으련만 밤꽃 환하게 피는 기쁜 하루하루를 사시니 말이에요. 삶의 소중한 의미는 나이에 있지 않다는 것, 일깨워 주시네요. 강변에 핀 아기 민들레의 나이는 몇 살쯤 되었을까요. 봄에 태어나 가을엔 잠시 몸을 숨기지요. 다음 해 봄에 다시 꽃을 피웠다가 바람에 두리둥실 민들레 홀씨 날리겠지요. 그 나이가 만살, 십만살, 도대체 몇 살인지 몰라요. 어르신들 남은 이승의 시간 선선하게 사시다 100세 훌쩍 넘어서도 밤꽃 환하게 피우세요.

곽재구 시인
2022-03-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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