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제/김희수 · 푸른 소금/피재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제/김희수 · 푸른 소금/피재현

입력 2021-09-23 17:14
수정 2021-09-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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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선과 색채. 11월 28일까지 갤러리애프터눈 개인전



푸른 소금/피재현

머리를 곱게 빗은 전옥례 할머니는

엄마더러 자꾸 집에 가라 했다

혼자 살더라도 집에 가서 죽으라고

가뜩이나 요양원 탈출을 꿈꾸는 엄마를 부추겼다

당신은 가고 싶어도 갈 집이 없다고

며느리 보기 싫어 제 발로 나왔으니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겨울 한봄 그렇게 잡혀 있는 동안

일곱이 죽어 나갔는데 나도 곧 죽겠지

오래 살기야 하겠냐고

머리를 곱게 빗은 전옥례 할머니는

나에게 가끔 설탕을 사다 달라고 했다

토마토며 덜 익은 수박에 설탕을

뿌려 여섯 침상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엄마가 퇴원하는 날 ‘할매요 고마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엄마랑 같이 살아요’ 했더니

실없는 그 말에 아흔여섯 전옥례 여사 눈빛이

아주 잠깐 푸른 소금처럼 잠깐 빛났다

피존밀크(pigeon milk)라는 말을 좋아해요. 어미 비둘기가 병아리에게 먹이는 젖의 이름이지요. 어미의 목에 좌우 하나씩 수유관이 있다는군요. 병아리는 이 수유관을 통해 젖을 먹지요. 두 병아리가 엄마 좌우에서 젖을 빠는 모습 생각하면 마음이 환해져요. 그래서 비둘기는 알을 두 개만 낳는다는군요. 양육은 모든 어미들의 꿈이고 사랑이지요. 아흔여섯 전옥례 여사 또한 그 꿈과 사랑 지극했겠지요. 아흔여섯이 되어서도 양로원 할머니들 토마토며 수박에 설탕 뿌려 주지요. 시인은 ‘할매 우리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살자’ 하는군요. 어미는 새끼를 먹여 키우고 새끼는 자라 어미를 업고 지내는 것, 생명의 아름다움 아니겠는지요. 두 할머니 함께 시인의 집에 살면 참 좋겠군요.

곽재구 시인
2021-09-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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