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학 / 봄
90×45㎝, 캔버스에 유채, 2004
서양화가, 한국 수채화 공모전 대상
서양화가, 한국 수채화 공모전 대상
연기와 여자들 틈에 끼어
나는 무도회에 나갔다
밤이 새도록 나는 광란의 춤을 추었다
어떤 屍體를 안고
황제는 불안한 샹들리에와 함께 있었고
모든 물체는 회전하였다
눈을 뜨니 運河는 흘렀다
술보다 더욱 진한 피가 흘렀다
이 시간 전쟁은 나와 관련이 없다
광란된 의식과 불모의 육체…그리고
일방적인 대화로 충만된 나의 무도회
나는 더욱 밤 속에 가라앉아 간다
石膏의 여자를 힘있게 껴안고
새벽에 돌아오는 길 나는 내 전우가
전사한 통지를 받았다
6ㆍ25 동란 중에 쓰인 시. 시인은 무도회에서 밤새 춤을 추고 새벽녘에 전우의 사망 통지를 받는다. 외국인 병사들과 섞여 밤새 춤을 추지만 그 깊은 허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함께 춤추는 아름다운 여인은 시체이며 석고일 뿐이다. 순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꿈. 절실한 생의 바이블. 요즘 한국인들 보기 흉하다. 뜨거운 것이 무엇인지 진실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삶의 예의는 사라지고 없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66년, 문득 포연 속의 그 시절이 그립다. 적어도 전쟁 속에서 몰려다니며 부동산 투기를 하고 위장 전출입을 하고 남의 논문을 카피하고 그 어떤 블랙코미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저질 정치인들을 보지 않아도 좋을 테니.
2019-07-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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