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혼자 가는 먼 집/조성천 · 소녀와 꽃의 사정/신영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혼자 가는 먼 집/조성천 · 소녀와 꽃의 사정/신영배

입력 2018-02-09 21:04
수정 2018-02-0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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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조성천
혼자 가는 먼 집/조성천
혼자 가는 먼 집/조성천 26.2×26.2㎝, 종이에 PVC
대진대 서양화과 대학원 졸업. ‘리턴 투 네버랜드’ 등 다수의 개인전과 국내외 아트페어 참여.
26.2×26.2㎝, 종이에 PVC

대진대 서양화과 대학원 졸업. ‘리턴 투 네버랜드’ 등 다수의 개인전과 국내외 아트페어 참여.

소녀와 꽃의 사정/신영배

소녀가 그림자를 가지고 놀았다

소녀는 중얼거리고 그다음 사라졌다

계단은 아침에 짧아지고 저녁에 길어지네

소녀는 긴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문은 월요일에 짧아지고 화요일에 길어지네

소녀는 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꽃은 햇빛에 짧아지고 달빛에 길어지네

소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길고 긴 꽃 속을 걷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달을 따라갔다

노란 돌을 주워 멀리 던졌다

강물이 노란 돌을 데려갔다

소녀는 강물을 따라갔다

먼 곳에는 아름다운 새가 있을까

새 모양의 귀를 달고

소녀는

길어지고 길어지고

달이 긴 소녀를 따라간다

강물이 길고 긴 소녀를 따라간다

소녀는 길고 긴 꽃 속을 걸었다

꽃이 계속 길어지는 이유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소녀 때문이었다

종일 제 그림자를 갖고 놀고, 아침에 짧아지고 저녁에 길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는 소녀라니! 소녀는 저 혼자 노는 일에 익숙하다. 소녀가 강물을 따라간 것은 “먼 곳에 [있다는] 아름다운 새”를 향한 동경 때문이다. 그 동경이 얼마나 큰지 소녀는 “새 모양의 귀를 달고” 있다. 소녀의 동경과 기다림은 자꾸 길어진다. 소녀는 달과 강물을 따라 걷고, 달과 강물은 거꾸로 길어진 소녀를 따라간다. 소녀를 따라가는 달과 강물, 그리고 꽃도 소녀가 길어진 만큼 길어진다. 소녀가 길어졌다는 것은 소녀가 이미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뜻이다.

장석주 시인
2018-02-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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