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욱 The Gesture-15029
90x90㎝, 캔버스에 혼합재료
홍익대 회화과 학사·석사. 아라리오갤러리·노화랑·도쿄갤러리 등 국내외 개인전 다수.
90x90㎝, 캔버스에 혼합재료
홍익대 회화과 학사·석사. 아라리오갤러리·노화랑·도쿄갤러리 등 국내외 개인전 다수.
하얗게 함박눈이 내리는 마당은
잠실(蠶室), 누에방이다
누에방에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눈에 뽕잎을 먹을 때 내는 소리는
콩밭에 가랑비 내리는 소리
굵은 빗방울이 연잎에 듣는 소리
포목점에서 비단 찢는 소리
녹두알만한 누에똥이 후두기는 소리는
댓잎파리에 싸락눈 뿌리는 소리
섶에 올라 제 입의 명주실을 뽑아
하얀 고치의 적멸보궁을 짓는 소리는
끝없는 정적으로 들어가는 소리
눈이 오는 날은 눈 밖의 소리가 다 보인다
함박눈 내리는 날 세상은 적멸의 고요에 감싸인다. 놀라워라, 그 고요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세상은 작은 소리로 가득 차 시끄럽다. 그 소리를 귀로 듣는 게 아니 눈[目]으로 듣는데, 누에가 뽕잎을 갉을 때 내는 소리와 닮았다. 시인은 함박눈 내리는 마당을 누에방이라고 한다. 수천 마리 누에가 뽕잎을 갉고 누에똥을 누며 자라서 마침내 섶에 올라 누에고치를 짓는다. 아, 함박눈 내리는 날은 종일 일손을 놓은 채 눈곱재기창으로 마당을 내다보며 눈 쌓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장석주 시인
2017-12-23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